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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화재 현장을 재현한 무대.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지시에 따라 앉아 있던 관객들은 무대 위로 끌려나갔다. 피해자 체험이다. 연극 ‘여수 처음 중간 끝’은 2007년 전남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을 직설적으로 다뤄 파장이 일었다. 당시 사건을 겪은 노동자를 포함해 실제 이주민들이 극을 꾸렸다. 비극의 전달력은 더 컸다. 이를 보던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도 박수를 치지 못했다. 극을 연출한 박경주(47) 씨는 “미안해서가 아니겠느냐”고 2010년 9월 초연 때를 떠올렸다.
박씨는 2009년 몽골·중국·필리핀 등에서 온 이주민들로 구성된 극단 샐러드를 만들었다. “이주민이 겪는 고통을 들춰내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홍대 미대를 졸업한 후 1993년 독일로 유학을 가 겪은 이주민에 대한 멸시가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네오나치 세력이 정말 위협적이었다. 베를린에 살았는데 외국인은 저녁에 지하철을 타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광기가 두려웠고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니 한국이 ‘문화다양성 사각지대’가 됐다. 올초에는 ‘아프리카 예술인 노예계약 논란’이 불거졌다. 부르키나파소 출신 무용수 엠마누엘(34) 등이 경기 포천시의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서 법정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월 60만원)을 받고, 상한 쌀로 밥을 해 먹었다고 폭로해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됐다. 이뿐이 아니다. 2002년 예술흥행(E-6)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행을 선택한 코트디부아르 출신 무용수들은 석달 동안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월급 20만원을 받는 등 노예취급을 견디다 못해 박물관을 뛰쳐나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됐다. 관광업소 공연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여성 중 일부는 공연기획사에 의해 유흥업소로 넘겨진 적도 있다. 박씨는 “예술인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들은 노동법보호를 받지 못한다”며 “관리·감독이 꾸준히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비단 예술계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일이 아니다. 샐러드 단원들도 일상에서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겪고 산다. 란찌엔화 씨는 “아이 때문에 학교에 갔는데 어떤 학부모가 어디에서 왔냐길래 중국에서 왔다고 하니 ‘학교 주변에 외국사람이 많다’며 싫은 내색을 해 상처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모국에서 교사로 일했던 마테오 씨는 “한국사람들은 이주민들을 자신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주민들은 그림자처럼 살기 마련이다.
△“미국도 이주민 들어와 예술발전”
박씨는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예술이 일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이주민도 창작을 통해 소통해야 한다”는 게 박씨의 지론. 이를 위해 2011년 ‘배우 없는 연극’을 시작으로 단원들에 예술강사·분장·조명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도록 길을 열어줬다. ‘수크라이’는 연출도 이주민 단원에 맡겼다. 이를 계기로 연출을 맡은 마테오 씨는 작품에 필리핀 문화를 녹였다. “한국사람들에게 필리핀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미국도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예술이 발전했다. 다른 시선이 물을 준 것”이라며 “다양성에 대한 열린 시선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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