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전략)명분찾기

  • 등록 2008-08-21 오전 8:10:23

    수정 2008-08-21 오전 8:10:23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차라리 안 산 곳이 어디냐고 묻는 게 빠르다" 어느 쪽에서 달러를 샀냐는 질문에 한 외환딜러가 이렇게 답했다. 다시 "안 산 곳은 어디냐"고 고쳐 물었더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국의 등장에도 환율이 고작 0.1원 떨어지는데 그친 이유다. 역외, 정유사, 투신사, 국내 은행 모두 사들였다는 것이다. 1050원선은 막아냈다는 데에 의의를 둘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외환보유액을 헐어 좀 싸게 달러를 공급해 주는 `바겐세일`을 한 셈이다.

사실 물가에 대한 우려는 어느정도 진정됐다. 유가가 110달러대에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도 어느정도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지는 모습이다. 이는 전일 실시된 물가연동국채 입찰 결과에서도 읽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물가연동국채 10년물 입찰을 실시했지만 응찰율은 40%에 불과했고 낙찰금액은 아예 없었다. 지난달 입찰에서도 44%를 기록했다. 이전 몇달간 응찰율 100% 안팎을 기록했던 것에 비해 인기가 급속도로 시들해진 것이다.

국고채와 물가연동국채간 수익률 차이인 BEI(Breakeven Inflation Rate)도 지난달 중순 350bp까지 벌어졌었지만 최근에는 280bp 수준으로 좁혀졌다.

워낙 시장 규모가 안되고 유동성도 풍부하지 않은 지라 기대 인플레이션 척도로 쓰기는 부족하지만, BEI 수치 자체는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가라앉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 입장에서는 개입하지 않고 버티기 어려웠던 이유는 1050원선이 연고점이면서 지난달 환율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공표하기 바로 전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백억달러를 쏟아부어가면서 환율을 관리해왔는데, 요 몇일간 방관함으로써 이전 수준을 훌쩍 넘어버린다면 당국의 노력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

게다가 최근 몇 일간 강달러 현상이 주춤했다. 달러가 다른 통화에 대해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인다면 당국으로서도 `글로벌 추세에 달러-원 환율만 역행할 수 있겠나`는 식으로 방관할 명분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지난 11일 이후 두문불출이었던 당국이 개장초부터 행동에 나선 이유기도 하다.

밤사이 달러는 다시 강세를 보여 유로에 대해 6개월래 최고치까지 올랐고 파운드에 대해서도 2년래 최고 수준을 보였다. 유가는 소폭 올랐지만 뉴욕 증시는 휴렛패커드의 긍정적인 실적전망에 사흘만에 상승했다.

그렇다고 금융불안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국 양대 모기지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높아지면서 이들 업체 주가는 20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환율 상승을 지지하는 대외여건은 여전하고, 특히 달러가 다시 뚜렷하게 강세를 보였다. 전일 환율 종가는 1049.3원. 1050원선까지는 0.7원 부족하다. 지금 같은 분위기로는 금방 채울 수 있는 갭이지만 당국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다.

전일 장 마감 이후 NDF에서도 관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그럴 여력도, 필요도 예전만 못한게 사실이다. 앞으로 이같은 싸움이 한달내에 끝날지, 1년을 이어갈지, 그 이상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실탄을 아끼면서 장기전을 준비해야 할 시점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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