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는 불가능하다”는 것. “카드 가맹점 계약은 되어 있지만, 몇몇 실무적 문제가 있어서 신용카드를 이용한 보험료 납입은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박씨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보험사가 왜 편리한 카드를 안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 어겨가며 카드 결제 거부
신용카드로 보험료를 내고 싶어하는 보험 소비자들이 많다. 보험료를 신용카드로 납부하면 소득공제도 많이 받고, 카드 포인트도 많이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통장에 잔액이 부족해도 보험료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보험사는 신용카드 가맹점이면서도 대부분이 신용카드로는 보험료를 받지 않거나 제한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보험사의 경우 삼성·대한·교보 등 소위 ‘빅3’에 확인해 봤더니 모두 “신용·체크카드를 이용한 보험료 납부는 처음 보험에 가입할 때만 가능하고 이후에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현재 생보사 보험료의 98%는 은행 자동이체로 걷히고 있다. 손해보험사의 경우도 자동차보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용·체크카드로는 보험료를 받지 않는다.
이 같은 행위는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 거래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신용·체크카드를 안 받아도 된다’는 규정이 없는데, 만약 카드를 받지 않는다면 법 위반”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왜 보험사들은 카드를 안 받는 걸까? 보험사들은 제도적 문제를 들고 있다.
A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업법상 보험료를 걷을 때 드는 비용을 ‘수금비’로 정해놓고, 그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제, “현행 규정상 수금비는 보험료의 2.5%에 불과한 반면, 카드사에 내야 할 수수료는 3%대가 넘어가기 때문에 보험료를 카드로 받으면 오히려 보험업법을 위반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국계 보험사인 AIG가 카드로 받는 것을 보면,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AIG 관계자는 “보험개발원 지침에는 수금비를 2.5%로 권장하되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조정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AIG는 수금비 비율을 높여 카드 수수료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또 예금이나 펀드 등 다른 금융상품도 카드를 안받는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카드를 안 받는다는 보험사들도 영업에 도움이 될 때는 카드를 받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보험 가입 후 처음 내는 보험료(초회 보험료)나 연 1~2회만 내면 되는 자동차보험은 카드를 받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보험모집인 최모(35)씨는 “처음 보험을 가입할 때는 현금이 없는 사람도 부담 없이 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카드 납부를 받는다”고 털어놨다.
◆진짜 이유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보험모집인 A씨는 “본사에서 카드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면 우리도 보험료 카드 납부를 꺼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감독 당국은 뭐 하나?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카드를 받는 것이 원칙이고 그렇게 지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드 안 받는 보험업계 관행은 여전하고 금감원이 지도를 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적도 없다.
금감원은 또 최근 ‘체크카드 활성화 방안’을 통해 예금과 펀드, 주식 납입 대금은 물론, 복권과 카지노 칩까지 체크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유독 보험료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생명보험사들이 걷어 들인 보험료는 66조원에 이르렀다. 손해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 이외의 개인 보험에서 받아간 돈도 13조6000억원에 달한다. 보험사는 이를 수금하는 비용으로 2.5% 정도(1조원 상당)를 책정해 놓고 있지만, 고객이 은행 자동이체로 보험료를 낼 경우 수금 비용이 0.1%도 안 되므로, 그 대부분을 앉아서 버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