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휴렛팩커드(HP)와 컴팩컴퓨터간의 합병 주총이 적법했는 지 여부를 따지는 법정소송이 23일 미국댈러웨어 법정에서 첫 심리를 시작했다.월터 휴렛의 변호사는 이날 댈러웨어 법원에 HP와 컴팩간의 합병은 "주주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증거로 HP의 사내 메모를 증거로 제출했다.
월터 휴렛의 변호사는 "HP의 경영진은 컴팩과의 합병으로 이익이 줄어들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또 "HP의 주주이자 기관투자가인 도이체 방크에게 컴팩과의 합병에 찬성해주는 조건으로 1백만달러의 보너스를 약속했다"고 폭로했다.월터 휴렛의 변호사인 스테판 닐은 "이같은 일련의 행위는 칼리 피오리나 CEO 모르게 CFO인 밥 웨이만 주도로 진행됐다"며 "피오리나는 사적으로 도이체 방크에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역사상 최대 합병건으로 일컬어지는 HP와 컴팩컴퓨터간의 합병은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해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그러나 대주주인 월터 휴렛의 공식적인 합병 반대 캠페인에 이어 합병 주총과정에서의 표대결,월터 휴렛의 소송 제기,칼리 피오리나의 보이스메일 공개,HP이사회의 월터 휴렛 제명 움직임 등등이 숨가쁘게 이어지며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단 합병 주총은 HP의 승리로 끝났다.HP는 지난주 월터 휴렛에 4500만표 차이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그러나 월터 휴렛은 "정작 싸움은 지금부터"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월터 휴렛은 HP의 공동창업자인 윌리엄 휴렛의 아들이며 HP주식의 6%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월터 휴렛은 15년간 HP 이사회의 정식 멤버였으나 최근 HP 이사회는 월터 휴렛이 제기한 소송(현재 진행중인)이 "해사행위"라는 점을 들어 그를 다음번 이사회 멤버로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
HP와 월터휴렛과의 법정소송은 이미 월가는 물론 미국 비즈니스업계의 관심사로 부각돼 있다.대주주와 회사간의 분쟁 자체도 흔한 일이 아닐뿐더러 이것이 미국 기업의 해묵은 이슈중의 하나의 "주주-대리인"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또 경영자의 "고유한 경영행위"는 과연 어디까지 존중될 수 있고,이것이 주주의 이해와 상충되지는 않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비즈니스업계의 관심사다.
이밖에 회사와 기관투자가간의 부적절한 관계(?)나 HP의 CEO인 칼리 피오리나의 보이스 메일이 공개되는 등 법정소송의 양념까지 가미돼 양측의 공방은 한층 흥미진진하다.HP와 휴렛팩커드간 재판의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합병은 과연 주주에게 도움이 되나?=재판의 핵심은 사실상 이 문제이지만 법원이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법원은 단지 합병 주총의 과정이 적법했는지만 판결할 것이다.단 그 과정에서 양측간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이슈화될 전망이다. HP의 경영진들이 주주들의 이해가 침해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합병을 서둘렀는지,아니면 단기간에 이익이 줄더라도 장기적으로 회사의 이익에 부합이 된다면 이같은 경영진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는 지 등등의 이슈가 부상할 전망이다.
◆HP와 컴팩간의 합병주총은 적법했나?=이것이 바로 재판이 시작된 이유다.일단 댈러웨어 법정은 "재판이 시작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결해 월터 휴렛의 손을 들어주었다.HP는 재판 자체가 시작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왔다.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월터 휴렛은 HP의 합병 주총이 "부적절"했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야 한다.월터 휴렛측 변호사는 "사내 메모"등을 공개해 기선을 제압했다.
◆도이체방크의 역할은?=기관투자가와 회사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월터 휴렛측은 "도이체 방크가 합병 주총에 찬성표를 던지는 조건으로 1백만달러의 보너스를 약속했다"며 "도이체방크의 주총대리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에게 은근히 자리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HP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고 도이체 방크와는 지극히 정상적인 관계"라고 반박하고 있다.
◆칼리 피오리나의 보이스메일은 어떤 내용?=이런 류의 법정소송에 흥미를 더할 수 있는 양념 같은 재료다. 칼리 피오리나는 회사의 CFO에게 "HP와 컴팩간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뭔가 "특별한(extraordinary)"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여기서 월터 휴렛측이 걸고 넘어지는 것은 "특별한"이란 단어가 무얼 뜻하느냐는 것이다.
월터 휴렛측은 이 단어가 바로 "매수"나 "협박"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HP측은 "말 그대로 특별한 조치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이스메일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변호사들도 보이스메일이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그렇지만 법적 구속력 여부를 떠나 보이스 메일 내용은 두고두고 화제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