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어릴 때부터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우락(樂) 페스티벌’, ‘싱크 넥스트’ 등을 기획할 수 있었던 것도 비주류에 대한 저만의 관심이었습니다.”
안호상(65)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처음부터 예술경영 전문가가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안 사장에게 문화예술은 낯선 분야였다. 그런 그가 공연계에 뛰어들게 된 것은 대학 졸업 이후 1984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하면서다.
|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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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안 사장은 “예전부터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복합예술센터를 짓는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행정 요원을 뽑는다는 광고 문구도 끌렸다”며 “남이 안 하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사장은 예술의전당 입사 이후 1988년 정식 개관을 위한 행정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복합문화예술 시설을 처음 만드는 만큼 모든 것이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공간 운영 방안, 조직 구성 등과 관련해 참고할 매뉴얼이 없었다.
“재정 계획, 인력 고용 계획 등을 짜기 위해선 공간 계획부터 먼저 살펴봐야 했습니다. 국내에선 참고할 매뉴얼이 없어 고민이 많았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영국 바비칸 센터에 무작정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비칸 센터에서 연간 보도자료와 연차 보고서를 담은 홍보 키트를 보내줬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자료가 더 필요해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도 편지를 보내 연차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공연장은 어떻게 운영하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독학으로 배운 셈이죠.”
안 사장이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며 얻은 교훈은 “예술은 정책 결정자가 주먹구구식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에 따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예술의전당 입사 이후 10년 동안 예술경영이 자신과 잘 맞는 일인지 고민하며 보냈지만, 독학으로 예술경영을 배우면서 자신의 길을 결정했다. 1994년부터는 예술의전당 공연부에서 다양한 공연을 직접 기획했다. 특히 안 사장은 1999년 선보인 가수 조용필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콘서트, 지휘자 임헌정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4년에 걸쳐 진행한 말러 교향곡 1~10번 전곡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밀레니엄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조용필 콘서트는 예술계가 가만히 안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어요. 그러나 밀레니엄을 앞둔 시기에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한 번쯤은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용필 콘서트를 열었다가 수습이 안 되면 제가 사표를 내고 책임지겠다고 해서 콘서트를 예정대로 진행했죠.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도 그런 차원에서 진행했고요. 결과적으로는 두 공연 모두 성공적이었습니다.”
|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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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사장의 장기는 공연장의 ‘브랜드화’다. 2012년 국립극장 극장장 취임 이후에는 국립극장 제작 공연의 ‘컨템포러리화(化)’를 내세웠다.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연출가를 대거 초청해 창극, 한국무용과 작업할 수 있는 장을 펼쳤다. 그 결과 국립극장 레퍼토리 작품들은 지금도 외국에서 꾸준히 초청받고 있다. 국립극장 대표 여름 음악축제인 ‘여우락(樂) 페스티벌’ 또한 안 사장의 아이디어였다.
세종문화회관 사장 취임 이후엔 ‘제작극장’과 함께 여름 시즌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를 신설해 주목받았다. 2022년 처음 선보인 ‘싱크 넥스트’에는 그동안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 현대무용 단체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DJ 겸 프로듀서 250(이오공), 가수·화가·배우 백현진 등 젊은 세대가 주목하는 아티스트를 대거 섭외해 이색적인 무대를 만들어왔다. 안 사장은 “공연장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각 공연장이 가진 조건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시도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질 때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사장에게 예술경연은 이제 운명과 같다. 앞으로도 안 사장은 예술가를 위한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안 사장은 “우리나라의 예술가는 너무 빨리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라며 “예술가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들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확장해 주는 조력자 역할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