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소환한 제약주권]④신약, 임상실패해도 제약주권에 기여...급여협상서 지렛대

제약주권 실현에 임상 실패 국산 신약 재평가 필요
한미 폐암 신약 올리타, '타그리소' 급여 협상서 대체재 작용
코로나 치료제 렘데시비르, 2상서 실패 후 약물재창출 관심
  • 등록 2020-06-02 오전 5:01:30

    수정 2020-06-02 오전 5:01:30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한미약품(128940)이 폐암 신약으로 개발하다 포기한 ‘올리타’는 실패한 약이다. 임상 2상 후 국내 허가당국에서 조건부 허가를 받았지만 경쟁약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표적항암제 ‘타그리소’의 존재로 개발이 중단됐다. 하지만 업계는 올리타가 국내 보험급여 재정 절감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타그리소의 국내 보험급여 적용을 위한 약가 협상 과정에서 올리타가 타그리소 대체재, ‘플랜B’로 역할을 하면서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건강보험공단과 타그리소 약가를 협상할 당시 1000만원 이상의 가격을 주장했다. 건보 적용 협상이 결렬되면 환자가 약값을 오롯이 모두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표적항암제는 통상 한 달치 약값이 1000만원 이상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타그리소 약가는 결국 애초 아스트라제네카가 요구한 가격의 절반 수준인 500만~600만원에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약 허가를 받고 약가를 200만원대를 제시한 한미약품의 올리타가 국산 신약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협상은 글로벌 제약사와의 약가 협상에서 건보공단이 우월적 지위에서 협상을 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된다.

제약 주권 강화를 위해서는 성공하지 못한 신약 개발이라도 ‘단순 실패’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올리타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 신약이라도 모두 나름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19 치료제로 기대를 받는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도 사실 실패한 약이다.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해 임상2상까지 마쳤지만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쓰레기통에 처박힐 위기였다.

하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약물 재창출(드러그 리포지셔닝) 전략을 통해 기사회생한 약이다. 약물 재창출은 시판중인 약물이나 임상 후기에서 약효 미달 등으로 탈락한 신약 후보물질을 새로운 질병의 치료제로 쓰기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발기부전 치료제로 개발된 비아그라도 약물재창출로 탄생한 대표적인 약이다. 화이자는 이 약물을 원래 고혈압,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상 2상에서 약효가 부족해 약물의 투여량을 늘리기 위한 임상1상을 다시 하면서 발기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발기부전증 치료제로 방향을 틀었다.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국산 신약개발의 역사에서 시장 성공으로 이어진 약이 많지는 않지만 모든 개발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실패의 경험이 축적됐기에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처럼 100% 독자개발로 미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를 받는 신약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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