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실손보험 이어 카드 수수료 개편…정부의 지나친 가격통제

가맹점 93%, 정부 가격개입 대상에
가입자 부가서비스 혜택 축소 부작용
서울시 추진 제로페이에 은행 '끙끙'
계좌이체에도 수수료 수입 포기 강요
정부 정책 실패에 땜질식 가격개입
소비자·사업자 의견 반영엔 소극적
  • 등록 2018-11-28 오전 6:00:00

    수정 2018-11-28 오전 6:00:00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의 주먹구구식 시장 가격 개입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드 수수료다. 금융위는 내년부터 카드 수수료율 우대 대상을 기존 연 매출 5억원 이하 가맹점에서 30억원 이하 가맹점으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적격 비용 확인 결과 카드사의 수수료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해당 가맹점에 카드 서비스 제공 원가보다도 낮은 수수료를 부담하는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조처로 우대 수수료율 적용 대상은 국내 전체 카드 가맹점(269만 개)의 93%로 늘어나게 됐다.

의무수납제 등 기존 제도 문제는 외면

우대 수수료율 적용 대상과 우대 수수료율은 국회 논의가 필요한 법 개정 사안이 아니라 시행령과 감독 규정을 고치면 되는 만큼 정부가 사실상 국내 편의점·슈퍼·식당 등 카드 가맹점 대다수의 결제 수수료 가격 결정 권한을 갖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에 따라 3년마다 카드사 원가 분석을 거쳐 가맹점이 부담하는 것이 적절한 적격 비용을 계산해 이를 카드 수수료율에 반영하고 있다. 올해는 2012년, 2015년에 이은 세 번째 개정으로, 당초 지난 5월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을 때만 해도 업계 기대감은 컸다.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검토해 마련하겠다”고 금융위가 공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말에 그쳤다. 가맹점이 카드를 무조건 받도록 규정한 현행 의무 수납 제도 등 기존 신용카드 중심의 결제 시스템을 만든 핵심 원인은 손대지 않고 결과적으로 정부가 가격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대상만 크게 늘린 것이어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의무 수납제 같은 기존 제도를 전혀 손대지 않는 등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며 “카드사가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실을 감내하라는 것이 무슨 정책이냐”라고 비판했다.

금융 당국의 카드 수수료 가격 결정은 카드사 노동조합과 소비자의 반발을 사고 있다. 카드사 수익 악화에 따른 구조조정과 포인트 적립·무이자 할부 축소 같은 부가서비스의 축소 등 자영업자의 수수료 부담을 이들이 대신 짊어지게 돼서다.

제로페이·실손보험 등도 관치 논란

정부의 가격 개입이 논란을 부르는 것은 카드 수수료뿐만 아니다. 신용카드 가맹점의 높은 카드 수수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가 다음달 시범 도입할 예정인 ‘제로페이’도 정부 기관이 시장 가격을 사실상 결정하는 ‘관치’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 제로페이는 소비자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으로 상점 등에 설치한 QR 코드를 인식하면 소비자 은행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현금이 이체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은행 계좌 이체 서비스가 필수적인데도 수수료를 사실상 0원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서울시 등의 방침 탓에 수수료 수입을 그대로 포기해야 하는 은행이 속앓이하고 있다.

실손보험도 비슷한 사례라고 보험업계는 호소한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추진에 따라 민간 보험사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덜 줘도 되는 ‘반사 이익’이 생긴 만큼 내년 중 민간 실손보험료 인하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 가격을 정해주면 그 가격 수준에서 이뤄질 수 있는 거래가 줄어드는 등 사실상 시장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예를 들어 카드 수수료의 경우 현 정부가 소상공인에게 타격을 준 경제 정책의 실패를 메우려다가 카드 산업은 물론 경제 위축을 초래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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