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 향한 두 아들의 '오마주'

"첫 스승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성식·첼리스트 성원
'미수' 맞은 아버지 위한 헌정콘서트
"한국 클래식 토대 마련한 아버지
엄격·혹독한 가르침 우리 만들어"
양씨 父子가 함께하는 첫 무대
실력파 연주자 동참해 의의 높여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
  • 등록 2016-03-03 오전 6:16:00

    수정 2016-03-03 오전 6:16:59

형제음악가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오른쪽)과 첼리스트 양성원이 한국의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를 대표하는 음악계 원로 아버지 양해엽 전 서울대 교수(가운데)를 위한 헌정 공연을 마련하고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선다. “아버지는 큰 시련 때마다 우리의 기둥이었다”고 두 아들이 말하자 아버지는 “생각지도 않은 축하 연주를 받게 돼 기쁘고 고맙다”고 말했다(사진=지클레프).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동생과는 기회가 닿는 대로 함께 연주를 해왔는데 아버지와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뜻깊은 무대가 될 거다”(장남 양성식).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이제야 헌정무대를 마련한다. 올 초부터 파리에 머무는 바람에 전적으로 형에게 떠넘겼다. 하하. 고마워 형”(차남 양성원).

형제음악가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50·대구가톨릭대 교수)과 첼리스트 양성원(49·연세대 교수)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올해로 미수(米壽·88)를 맞은 아버지인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 전 서울대 교수의 헌정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어서다. 오는 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양해엽 선생께 헌정하는 사랑의 콘서트’는 성식·성원 형제를 비롯해 국내외 실력파 연주자가 나서 원로 음악가를 향한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양해엽 전 서울대 교수
두 형제는 연주회에 앞서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엄격하고 혹독하셨다. 원칙을 강조해 거의 매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면서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음악에 투철했던 아버지를 본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지금의 삶은 꿈도 못 꿨을 거다. 우리 형제의 기둥이자, 첫 스승”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도 고마움을 전했다. “아비를 닮아 말수도 적고 부자간에 별로 대화도 없던 장남이 이번 음악회를 직접 기획하고 세세하게 준비하는 것을 보니 다른 사람 같더라. 감개무량하다는 말 외엔 더 할 말이 없다. 하하.”

형제 음악가, 음악적 끼 이어받다

양 전 교수는 국내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다. 중학교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클래식음악을 듣고 바이올린을 구입해 독학으로 익혔다. 바이올린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한 뒤 서울대 음대와 프랑스 말메종 국립음악원에서 숱한 제자를 길러냈다. 정경화·김남윤·피호영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부터 차세대 연주자인 김다미까지 모두 그가 키워낸 제자들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
4남매 중 장남 양성식과 차남 양성원은 아버지의 음악적 끼를 이어받아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했다. 양성식은 1983년 파가니니, 1984년 롱티보 국제콩쿠르에 입상, 1988년 런던 칼 플레시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양성원은 솔리스트로 맹활약하고 있다. 2008년엔 트리오 오원을 결성해 실내악에도 매진하고 있다.

양성식은 “네 살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사운드트랙을 완벽하게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음악을 시키기로 했다고 들었다”며 “그 이유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악기는 다뤘을 것 같다”고 웃었다. 양성원은 “피아노를 배웠다가 첼로로 갈아탔다. 형 악기보다 컸고 (웃음) 앉아서 연주하는 게 좋았다”며 “어릴 적에는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방황도 많았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양 전 교수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하고 엄하게만 대한 것에 자성과 회한이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성식이는 어려서부터 수재니 신동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것을 경계하려고 오히려 모른 척한 면도 있었다. 성식이의 음악에는 테크닉뿐 아니라 깊이가 들어 있다. 인격을 갖춘 음악가다.” 차남에 대해서는 “성원이는 음악을 통해 느끼는 기쁨이나 감흥을 오롯이 쏟아내 청중에게 전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대견해 했다.

“나날이 음악적 깊이를 더해 연주자로서 교육자로서 모범이 돼 클래식계는 물론이고 교육계를 이끄는 역할을 하는 두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음악은 찰나의 예술이다. 그래서 음악가는 평생을 노력해야 한다. 체력 단련에도 항상 유념해야 한다.”

아버지와 첫 호흡…관록의 무대 될 것

첼리스트 양성원
직접 음악회를 기획하고 준비한 양성식은 “우리 형제만이 아니라 이경선 서울대 교수 등 음악계의 여러 선후배가 기꺼이 참여해 주기로 했다”며 고마워했다. 이어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많은 제자 중 최근 몇년간 여러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고 차세대 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김다미 양을 1순위로 세운다”고도 덧붙였다.

아버지의 제자는 아니지만 유쾌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실내악단도 힘을 보탠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을 중심으로 국내 실력파 연주자를 모은 서울 비르투오지 챔버 오케스트라, 양성식 자신이 이끌고 있는 실내악단 에라토 앙상블 등이다.

이번 헌정무대에서는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 비발디의 ‘4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차이콥스키의 ‘플로렌스의 추억’ 등을 합주와 협연 등으로 다채롭게 편성해 청중과 소통할 생각이다. 특히 두 형제는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로 오랜만에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두 형제는 “한국 클래식음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아버지의 노력에 감사한 마음을 담았다”며 “1960~70년대 유일한 연주자 겸 교수로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던 노고를 가족과 제자가 함께 되새겨 보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동안 아버지에게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묻자 양성식은 “음악가로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실망하신 건 아닌지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양성원은 “내년이면 나도 쉰살이다. 음악가로서 교육자로서 음악을 어떻게 사회에 실현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아버지처럼 늘 고민한다”며 “이번 헌정무대가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한다”고 아버지의 건강을 바라는 아들의 마음을 전했다.

양해엽 선생의 제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왼쪽부터), 정경화, 김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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