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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황금률과 은율은 개인의 윤리관 내지 자기관리에 관한 명언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다가 사회개혁에 대한 철학의 차이를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쓴 정치철학자 칼 포퍼가 대표적이다. 포퍼는 정치적 이상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지상에 천국을 실현하겠다는 시도는 언제나 지옥을 만든다. 우리가 남의 고통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 의무지만, 남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면서 자신의 가치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재나 전체주의 체제가 등장할 수 있다.
포퍼는 이처럼 적극적으로 지상에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식의 황금률에 입각한 시도를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으로 부르고, 소극적으로 남의 고통과 사회악을 점진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식의 은율에 입각한 시도를 ‘점진적 사회공학’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열린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점진적 사회공학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포퍼의 결론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하이에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무엇이 정의인지 보다 무엇이 정의가 아닌지를 더 잘 알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것들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정의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개입주의자들은 실제 세상은 알지도 못하면서 황금률에 따라 시시콜콜 세상 일에 개입하고자 한다. 개입주의자는 어느누구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자기들은 세상 일의 모든 인과관계를 다 안다는 식의 암묵적 전제하에 개입을 시도한다. 탈레브는 이 같은 개입주의자들이 심각한 세 가지 결함을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황금률을 신봉하는 개입주의자들의 수단인 정부 규제는 대다수가 탈레브가 지적한 것과 같은 결함을 안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최저임금 인상이건 주52시간 근무제건 분양가 상한제건 간에 한 건의 규제는 수많은 파급효과를 야기하고 있다. 한 건의 규제가 의도했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속도조절도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한 다수의 보완입법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당초의 규제가 의도했던 효과는 얻지 못한 채 더 많은 규제를 양산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황금률에 따라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개혁도 혼란만 초래하면서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 아니라 점진적 사회공학이다. 우리는 좋은 것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쁜 것을 빼는 방식’으로 오류를 줄여나가야 한다. 둘 다 황금률이 아니라 은율에 따라 사회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개혁의 방법론과 철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