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조선 기자재 납품과 전자부품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며 “배낭공장을 하던 지인의 요청으로 배낭의 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20여년간 배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켈티’가 유아용 배낭의 알루미늄 프레임 개발을 요청했고 정 대표는 1년6개월에 걸쳐 프레임을 개발했다. 그는 “당시 켈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3%에 불과했다”며 “우리회사의 프레임이 적용된 제품이 크게 히트치면서 켈티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70%까지 높아졌다”고 전했다. 이어 “켈티는 프레임 외에도 배낭봉제까지 의뢰해 사업을 키우게 됐다”고 전했다.
켈티의 성공으로 동인기연이라는 회사는 아웃도어 업계에서 일약 유명세를 치렀다. 정 대표는 “수주를 위해 방문한 회사에서 수차례 문전박대를 당했던 신세에서 유명 회사들이 하나둘씩 먼저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동인기연을 아웃도어 업계의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바로 카멜백과의 협업이었다. 카멜백은 물을 넣어 마실 수 있는 자전거용 배낭 제작을 의뢰했다. 당시 카멜백의 설계가 마뜩지 않았던 정대표는 독자적인 3차원 형태의 디자인을 역으로 제안했다. 이 제품이 큰 반향을 일으켜 카멜백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결과 1997년 당시 5만달러(약 5800만원)에 불과했던 양사의 거래규모는 현재 1500만달러(약 176억원)에 이른다. 특히 카멜백이 이라크전 당시 미군에 공급했던 군용 배낭 역시 동인기연이 만든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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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승승장구하던 동인기연도 위기가 있었다. 첫번째 위기는 바로 2008년 키코사태였다. 키코 사태로 약 130억원의 손실을 입은 동인기연은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빚을 내 증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번째는 2012년 그레고리 회사에 납품을 전담하는 공장 한 곳에서 화재가 나면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키코 사태 이후 회사의 위기가 이어지면서 2012년 1353억원이던 매출은 2014년 992억원까지 줄어들었다. 2015년에 다시 1322억원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위기상황에서도 과감하게 투자를 한 것이 매출 회복의 요인”이라며 “위기가 올 때마다 헌신한 직원들이 없었다면 빠른 시간 내에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거래처가 먼저 찾아오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거래처가 우리 회사를 방문했을 때 반드시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OEM·ODM 전문기업의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거래처가 먼저 찾아오는 기업이라는 꿈을 달성한 동인기연은 2020년 매출 2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2020년 이후에는 자금조달을 위해 IPO(기업공개)도 고려 중이다.
아직도 일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을 찾지 못한다는 정 대표는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을 거치지 않고서는 대기업이 될 수 없다”며 “국가의 세제혜택이 기업규모별로 적용되지 않고 다양한 측면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국가는 큰 기업으로 가려고 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에 세제·인력 등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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