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친박(親朴)이지만 이제는 비박(非朴)으로 통하는 유승민 의원의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선이 작금의 정치지형에 던진 함의는 적지 않다. 우선 집권당의 구심점이 친박에서 비박으로 온전히 이동한 점이 눈에 띈다. 친박은 지난해 국회의장 후보 및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경선과 전당대회에 이어 당내 권력 다툼에서 4번 연속으로 졌다. 이에 따라 앞으로 당·청 관계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조짐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질타하며 증세 없이 복지만 늘리다 재정을 거덜 낸 아르헨티나와 그리스를 그 예로 들었다. 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정책인 ‘증세 없는 복지’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김 대표와 ‘비박 투톱’을 이룬 유 원내대표도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하지 않다”거나 “건강보험 개편 백지화는 잘못됐다”며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집권 2년도 안 돼 ‘집권당 울타리’가 통째 날아가 버릴 참이다. 하지만 위기는 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많다. 당에서는 “청와대 뒤치다꺼리나 하는 게 여당이냐”는 볼멘소리가 줄곧 터져 나왔다. 2년 동안 당·정·청 회의가 두 번뿐이고 당 대표가 취임 반년이 넘도록 대통령과 독대 한 번 못했다면 ‘불통 정치’의 대표적인 예다.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들도 수시로 백악관에 초대해 국정을 논의하는 미국 대통령과 너무 대조된다. 제 목소리를 못 내고 끌려다닌 당의 책임도 크지만 대통령이 여당을 너무 홀대한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 원내대표의 압도적 당선은 현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을 간파하고 내년 총선에서 살길 찾기에 나선 여당 의원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청 관계가 시급히 회복되지 않으면 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일성으로 “변화와 혁신을 통해 대통령, 청와대, 정부와 정말 긴밀하게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며 ‘소통의 정치’를 내세웠다. 이제 박 대통령이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