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th SRE]해운업 체력 ‘방전’

[위험산업]업황 회복에도 글로벌 경제력 저하
  • 등록 2013-11-13 오전 7:00:00

    수정 2013-11-13 오전 7:00:00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해운업에 대한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글로벌 해운사들과 차별화가 심화되며 국내 해운사들은 ‘바람 앞 촛불’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18회 SRE에서 역시 해운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글로벌 해운사들과 경쟁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됐다.

18회 SRE에서 해운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 111명 중 52명(47%)에 달했다. 건설업 다음으로 많은 표를 받았다. 국내 해운 업계가 운임지수 상승 등을 이유로 시황회복을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불황 걷혀도 문제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불황에서는 한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업황이 회복세에 돌입하면 기업 펀더멘털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크레디트 시장에서 국내 해운업을 걱정하는 이유다. 게다가 업황 회복이 가시화되기 전부터 실적 차별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체력에서 글로벌 선사들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1년까지 글로벌 유명 선사들도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내 선사들과 마찬가지로 실적 부진의 늪에서 허덕였다. 선박공급 과잉과 저조한 운임, 연료유 가격 상승으로 대부분 컨테이너 선사들이 대규모 영업손실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글로벌 상위 선사들은 달라졌다. 머스크(Maersk)는 글로벌 선사 대부분이 영업손실을 기록한 지난해 5억25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올해는 그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일본 선사들은 컨테이너 부문에서는 부진을 벌크 부문에서 수익으로 상쇄하고 있다. 중국 선사는 국영기업으로 대규모 납입자본금이 뒷받침되며 부채비율을 300% 이내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선사들은 선종다각화를 갖추지 못했고 정부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재무구조가 크게 약화했다.

가격 경쟁 시대 돌입… 차별 더 심화

게다가 글로벌 선사들이 선박을 대형화하며 경쟁력을 갖추는 상황에서 국내 선사들은 취약한 재무구조로 선박대형화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선사들이 실적에서 우위를 나타내는 것은 선박의 대형화와 높은 연료효율성, 우수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구조를 갖췄기 때문이다.

특히 상위 선사들은 물론 재무 구조가 안정적인 선사들도 고효율을 낼 수 있는 대형선박을 발주하고 있다. 선사들이 이처럼 선박 대형화에 나서는 것은 선박대형화가 곧 원가경쟁력, 가격 경쟁력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선사들은 재무부담 때문에 글로벌 선사들의 선박 대형화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원가 경쟁력 차이로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SRE 한 자문위원은 “글로벌 해운업이 이제 가격 경쟁에 돌입했다”며 “일정 수준 밑 선사들은 살아날 길이 막막해지는 구조”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서도 국내 선사들은 밀리고 있다. 세계 1~3위 업체인 머스크와 MSC, CMA-CGM은 내년부터 아시아와 유럽, 태평양, 대서양 등 주요 노선에서 선박을 공동 운영하는 ‘P3네트워크’를 구축했다. 3개사의 시장 지배력이 공고해지며 동시에 규모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 시급

글로벌 해운업계에 ‘대형화’가 화두로 떠오르자 일본과 중국 등에서는 정부를 주도로 한 선사 대형화까지 추진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3대 해운사의 컨테이너 부문 합병논의가 제기된 바 있고, 중국도 정부가 주도해서 1~2위 해운사인 코스코와 차이나시핑의 합병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신평은 중국과 일본, 독일 등에서 선사 합병이 이뤄지면 단숨에 글로벌 3개 선사에 필적한 대형 선단 규모가 갖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에서는 정부가 대규모의 대출이나 지급보증을 통한 직접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정부가 해운사 지분을 취득하는 등 대형화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SRE 한 자문위원은 “컨테이너 마진을 남길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대한민국 선사’라도 만들어 다 합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과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주요 선사들의 지분 구조가 복잡해 일본이나 중국처럼 합병을 꾀할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정부의 역할은 장기적 관점의 지원이나 대책 없이 선사에 대한 제한적인 유동성 지원에 그치고 있다.

크레디트 업계에서는 이같은 이유로 해운업황이 개선된다 해도 국내 선사들은 경기 회복에서 소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사들이 대형화와 네트워크 구축 없이 원가를 절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해운업은 서비스 차별화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도 어려운 구조다. 결국 선사들이 수익을 개선하고 막대한 금융비용을 대려면 10% 수준의 운임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신평은 유가가 안정되는 것을 가정할 때 상반기대비 9.5% 수준의 운임상승이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연료유 가격이 10% 하락해도 6.3% 정도는 운임이 올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운임인상은 불가능하다. 글로벌 상위 선사들이 낮은 단위당 운송비를 내세워 현재 운임에서도 영업이익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운임 상승 등 시황회복도 더딜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18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18th SRE는 2013년 11월13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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