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정명수기자] 최근 은행들은 1년물 채권을 5.5%대에서, 2년물 채권은 6.5%대에서 발행하고 있다. 은행채가 시장에 나오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방법이다.
14일 현재 금리스왑(IRS) 시장에서 IRS 1년물은 5.43%, 2년물은 6.10% 정도다. 만약 은행들이 스트레이트 본드를 발행하지 않고 CD로 자금을 조달한 후 스왑시장에서 고정금리와 스왑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은행들은 1년물 IRS 페이(고정금리 지급, 변동금리 수취)를 하면서 3개월마다 5.43%를 주고(2년물의 경우는 6.10%), 대신 CD금리를 받는다. 스왑뱅크로부터 받은 CD금리는 은행이 발행한 CD의 이자 지급에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1년물 은행채를 발행할 때보다 10bp 정도, 2년물은 30~40bp 정도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고정금리와 변동금리의 `현금흐름(cash flow)` 차이를 적절하게 이용, 이자를 그만큼 줄인 것이다.
현금흐름을 이용한 또 다른 상품 한가지. 최근 모투신사에서 3개월짜리 펀드를 설정했다. 우리나라 자금시장의 특성상 3개월 단기상품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 착안한 것.
우선 카드사에 2년 이상 장기 카드채를 발행하도록 한다. 이 카드채를 ABS로 만들어 현금흐름을 3개월 단위로 바꾸는 것이 핵심. 카드채를 SPC에 넘기고 SPC는 3개월 단위로 이자를 지급하는 ABCP를 다시 발행한다. 이 ABCP를 투신사가 매수한다. 투신사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3개월 자금으로 이 채권을 산다.
ABCP의 근원 채권이 만기 2년이상 장기채여서 통상적인 3개월 CD금리보다 높다. 투신사에 자금을 맡긴 고객들은 CD금리 또는 정기예금금리보다 약간만 높게 수익률이 나오면 만족이다. SPC에 남겨진 "나머지 이자"는 금리가 급등, 채권가격이 하락했을 때 수익률 보충용으로 비축한다.
`Cash Flow`를 조금만 바꾸면 전혀 새로운 상품이 나오는 것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이른바 `Legal Flow`를 약간만 수정하면 법률적인 문제때문에 투자 제한이 있는 곳에도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
발행을 앞두고 있는 KT 교환사채(EB)가 그 대표적인 예다. 현행 법률상 외국인들은 통신사업자의 주식 지분을 49%이상 취득할 수 없다. 이번 KT 민영화에도 외국인들은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싼 값에 KT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외국인들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일단 국내 A기관을 통해 KT 주식과 EB를 청약 일정 물량을 확보한다. A기관은 B증권사를 통해 이 주식과 채권을 매각한다. B증권사는 사전에 C투신사에 KT 주식과 채권으로만 채워지는 펀드를 설정, 수익증권을 발행하게 한다.
B증권사는 A기관에서 받은 주식과 채권을 C투신사 펀드로 넘긴다. 외국인 투자자는 C투신의 수익증권을 매수한다. 외국인 투자자가 KT 주식과 채권을 직접 사들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수익증권을 사는 것은 적법하다.
수익증권을 소유한 외국인은 KT 주식과 채권의 매도 타이밍, 매도 가격 등을 정해 투신사로 하여금 매매하도록 한다. 사실상 KT 주식과 채권을 법이 정한 한도 이상으로 보유한 것과 마찬가지다.
KT 주식과 채권이 A기관->B증권->C투신을 거치면서 수익증권으로 바뀌고 외국인 손에 들어갈 때까지 법률적 흐름(Legal Flow)은 어느 하나 위법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 같은 투자행위는 통신사업자법을 위반한 것이다.
다시 은행채 문제로 돌아가자. 모 시중은행의 자금담당자에게 "CD 발행후 스왑을 하면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는데 왜 그런 방법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담당자는 "그같은 방법은 알고 있으나 부서간의 협조 문제, 시스템 문제 등이 있고 아직은 스왑으로 조달비용을 낮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은행은 자체 파생상품 데스크가 있어서 별도의 시스템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다만 부서간 회계처리 등이 복잡할 따름이었다.
다른 은행의 파생 데스크 관계자는 보다 솔직하게 답했다. "좀 귀찮습니다. 금리스왑을 하면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회계 절차도 어렵고 부서간에 조율도 해야하고...."
KT EB를 `적법하게 위법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넘기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모 기관의 관계자는 각각의 투자 절차에 위법성이 없기 때문에 `딜`을 그대로 진행시킬 것이라고 한다.
스왑을 포함한 장외파생상품은 투자의 편의성, 효율성을 높여 준다. 아무리 지식이 있었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만 가치가 있다. 귀찮아서 이자 비용을 줄이지 못하는 국내 은행들과 적법하게 위법적으로 KT 투자를 성사시키려는 모 기관 중 누가 더 프로페셔널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