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 뮤지컬 업계에서는 아동뿐 아니라 부모 모두를 관객층으로 포용한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을 ‘패밀리 뮤지컬’이라고 지칭하며 가족 관객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가족 관객의 경우 1차적으로는 자녀와 부모가 함께 관람하기 때문에 티켓 3~4장을 한 번에 판매할 수 있는 높은 수익 구조를 창출한다.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아동 관객들이 미래의 잠재 관객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뮤지컬 시장의 정체 타개를 위안 대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 뮤지컬 시장 관객층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20~30대 여성 관객에 대한 고려도 필수적이다. 즉, 패밀리 뮤지컬 번역자는 아동 관객과 부모 관객뿐 아니라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젊은 여성 관객, 즉 이모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야 하는 ‘삼중고’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의성어·의태어로 아동 관객 눈높이 맞춰
|
우선, 아동 관객을 위해 사용된 전략으로는 의성어·의태어의 사용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이를 통해 의미를 감각적,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리듬감을 강화해 아동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이들의 흥미를 높였다. 마틸다가 도서관 사서 펠프스 선생님에게 자신이 지어낸 동화 ‘탈출 마술사와 공중 곡예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단적인 예다.
이야기 초반 마틸다는 탈출 마술사와 공중 곡예사에 대해 설명한다. 원작은 ‘an escapologist, who could escape from any lock that was ever invented’(지금까지 발명된 어떤 자물쇠라도 탈출할 수 있는 탈출 마술사), ‘an acrobat, who was so skilled, it seemed as if she could actually fly’(기술이 너무 뛰어나서 실제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는 공중 곡예사)로 길게 설명한다. 반면 한국어 대사는 ‘한 명은 어떤 자물쇠라도 뚝딱 열고 나올 수 있는 탈출 마술사, ‘또 한 명은 하늘을 슝- 날아오르는 우아한 공중 곡예사’로 의성어, 의태어를 적절하게 사용해 의미를 좀 더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리듬감을 살린다.
|
어린이들에게 친숙하고 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도 원작보다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작품의 첫 넘버인 ‘미라클’(Miracle)에서 “My mummy says I’m a miracle”(우리 엄마는 내가 기적이래)는 “울 엄마는 내가 짱이래”, “special little guy”(특별한 사내 아이)는 “오구 이쁜 강아지”로, “teacher”는 “쌤”으로 번역하는 등 원문의 일반적 표현들이 어린이들에게 좀 더 익숙한 명사, 감탄사 등으로 대체함으로써 아동 관객이 작품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극의 흐름에 보다 효과적으로 몰입하도록 도왔다.
성인 관객 공략 위한 언어유희 번역
|
이 작품의 대표 넘버인 ‘스쿨 송’(School Song)은 어린이가 처음 학교라는 조직 사회에 들어가서 겪는 두려움과 혼란을 알파벳 철자를 순서대로 배치해 표현한 언어유희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So you think you’re able (A-ble) to survive this mess by being a Prince or a Princess (B-ing). You will soon see (C) there‘s no escaping tragedy (trage-D)”(공주님이나 왕자님으로 이 혼란을 피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곧 이 비극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와 같이 알파벳 철자를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학교 생활이 기대와 다를 것임을 경고한다. 이 부분의 한국어 가사는 “오 그래쪄요. 에이(A)이구. 근데 지금부터 삐(B)지거나 울진 마라. 반항할 시(C) 죽이는 블랙 코메디(D)”로, 각 알파벳의 발음을 살리면서 영어 원문의 단어를 하나하나 직역하기보다 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뒤에 이어지는 “But if I try I can remember (rem-M-ber) Back before my life had ended (N-ded)”(하지만 노력해보면 내 인생이 끝나기 전을 기억할 순 있어)는 “이상하니. 뭔가 애매(M)해? 이런 반전 새드엔(N)딩”으로, “Before I first heard the pealing of the bell (P-ling)”(종소리를 처음 듣기 전에)는 “니 인생 종쳤다. 피(P) 볼 준비해”로 옮겼다. 역시 각 알파벳이 등장할 때마다 유사한 한국어 단어로 대체해 원문의 언어유희를 가급적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특히 “블랙 코메디”, “덫에 걸린 쥐”, “애매”, “반전”, “새드앤딩” 등은 아동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표현으로 번역 과정에서 성인 관객에 좀 더 초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아동 관객을 위한 장치도 사용되어 번역 과정에서 다양한 관객층에 대한 고민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은 한국어로 ‘ABC 송’으로 번역돼 관객에게 해당 넘버에서 알파벳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함을 전달한다. 또, 프로그램북에 수록된 한국어 가사에도 각 한국어 가사에 해당하는 알파벳 철자를 위의 설명과 같이 배치하여 아동 관객들도 언어유희를 좀 더 직접적, 명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층적 관객군의 기대와 수요를 좀 더 정교하게 충족시키고자 했다.
|
이러한 양상은 마틸다와 같은 학급 아이들이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히던 트런치불 교장에게 반기를 들면서 부르는 ‘리볼팅 칠드런’(Revolting Children)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넘버의 한국어 제목은 ‘토 쏠리게 개기는 아이들’이다. 이 넘버에서 “Using revolting rhymes”(반항적인 각운을 사용해)와 “Now we’ve sent the Trunchbull bolting”(우리 덕분에 트런치 불이 도망쳤어)는 각각 “빡친 춤을 추고”, “이젠 트런치불 잘 꺼졌다”로 번역되었다. 심지어 원문의 “She can take her hammer and S-H-U”(망치를 잡고 슝)에서 “S-H-U”는 트런치 불의 학대를 상징하는 해머가 날아가는 소리와 ‘shit’의 완곡어인 ‘shoot’의 발음을 동시에 연상시키면서 이중적 의미를 전달하는데, 한국어에서는 “씨ㅂ”이라는 욕설로 번역됐다.
이 작품이 8세 이상 관람가인데다 평균 연령 10세 안팎의 아동 배우들이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표현들은 공연을 관람하는 아동 관객이나 해당 넘버를 부르는 아동 배우의 교육과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원작 자체가 잔혹 동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만큼 마틸다를 학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괴롭히는 부모의 행태나 트런치 불에 대한 아이들이 분노와 화 등 원작의 분위기나 정서를 전달하는데 이러한 접근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특히 해당 작품이 아동뿐 아니라 성인 관객을 함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번역 과정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
* 본 칼럼은 2021년 출판된 ‘패밀리 뮤지컬 번역과 아동 관객: <마틸다>를 중심으로’ 제하의 논문 일부를 발췌 및 수정한 것입니다. 원작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공식 계정에 2017년 2월24일 업로드된 유튜브 영상과 뮤지컬 넘버 가사를 제공하는 ‘올 뮤지컬즈’(All Musicals) 사이트를, 한국 공연은 2022년 1월 5일 업로드된 한국 재연 공식 프레스콜 유튜브 영상을 참고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영어통번역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뮤지컬 번역으로, ‘Taboos, Translation, and Intersemiotic Interaction in South Korea‘s Successful Musical Theaters’, ‘국내외 뮤지컬 번역 연구 현황 및 향후 연구 방향’, ‘패밀리 뮤지컬 번역과 아동 관객: ‘마틸다’를 중심으로’, ‘뮤지컬 번역에서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멀티모달적 고찰: ‘썸씽로튼’을 중심으로’ 등 라이선스 뮤지컬 번역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한 논문을 A&HCI급 국제 학술지, KCI 등재지 등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활발하게 출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