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지난해 말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허위 뇌전증 병역비리’ 스캔들의 당사자·가담자 130명 전원이 유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병역비리는 입시비리와 함께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중대범죄로 여겨지는 만큼, 날로 교묘해지고 지능화되는 병역비리를 잡기 위한 당국의 꾸준한 단속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병역면탈 사범 130명, 1심 재판 마무리 | 징병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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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검은 지난 7일 브로커 A(46)씨, 브로커 B(38)씨, 의사·운동선수·연예인 등 면탈자 108명, 한의사·변호사 등 공범 20명 등 전원이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직 군 수사관 출신으로 행정사를 하던 브로커 A씨는 징역 5년에 추징금 13억 7987만원, 전직 소령 출신으로 행정사를 하던 브로커 B씨는 징역 3년에 추징금 2억 176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면탈자 108명과 공범 20명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받았습니다.
뇌전증은 소위 간질로 불리며, 뇌 신경세포가 과도한 흥분상태가 되면서 반복적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환자 가운데 30~40%는 자기공명영상(MRI) 진단에서 이상소견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 병역비리는 무릎수술·탈골 등 신체에 물리적 손상을 가해 면탈을 시도하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적발된 비리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신경계 질환을 면탈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병역비리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역 브로커인 2명은 2019년 9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병역 면탈자 등과 공모해 거짓으로 뇌전증 환자로 행세해 허위진단서를 발급받고 병무청에 제출하는 등 위계로 병역을 감면받고, 병적기록표에 병명 등이 잘못 기재되도록 했습니다. 브로커들은 의뢰자들로부터 300만~1억 1000만원을 받고 맞춤형 시나리오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허위 진단서 바급 이후에도 1~2년간 진료기록이 남도록 하고, 최종 약물에서 양성반응이 나올 수 있게 약물을 복용토록 하는 등 장기간 상담·관리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실제 뇌전증은 뇌파검사를 통해 걸러지는 경우가 많지 않아 신체검사일 기준 치료 내역이 1년 이상이면 4급(보충역), 2년 이상이면 5급(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받은 죄명은 병역법 위반,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 등 입니다. 면탈자 및 공범들을 브로커 등과 공모해 뇌전증 환자인 것처럼 행세하며 병역을 감면받았습니다. 이들의 죄명은 병역법위반과 위계 공무집행방해 입니다.
130명 중 9명, 양형부당 이유로 항소 | 판사봉(이미지=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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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병역브로커 A씨와 면탈자 일부는 재판과정에서 실제 뇌전증 증상이 있었다거나 공모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범행을 부인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브로커와 면탈자의 계약서 △병역판정검사에서 뇌전증 호소방법 등이 기재된 시나리오 △발작 증세를 시작하라는 문자 메시지 △브로커에 대한 대가지급 내역 △병역 면탈자의 과거 병력과 사회연결망서비스(SNS) 활동 내역 등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법원 또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일부 무죄판결조차 없이 전원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죄를 적용, 기소해 범죄수익 16억원 전액을 박탈했다고 밝혔습니다. 병역법위반으로만 기소했다면 범죄수익환수법 개정 전 범행으로서 범죄 수익 환수가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죄란 공무원에 대해 허위신고를 해 공정증서원본 또는 이와 동일한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에 부실의 사실을 기재 또는 기록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병역법위반뿐만 아니라 ‘병적기록표’에 허위 내용이 기재되도록 한 행위를 범죄 혐의로 적용,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앞서 검찰은 2022년 12월부터 3개월간 병무청과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을 구성했습니다. 검찰총장 지시로 같은 달 29일 수사팀을 확대 개편했습니다. 올해 3월까지 브로커 2명과 면탈자·공범 128명을 기소했습니다. 지난 4월부터 12월까지 브로커 두 명과 면탈자·공범 등에 대한 1심 판결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피고인 130명 중 9명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항소심에서 불법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도 헌법상 병역의무를 면탈한 범행에 대해 병무청과 긴밀히 협력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