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이슬아(31)는 그럼에도 정치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는 운명공동체”라며 그 뒤편 얼굴을 불러내는 식이다. 사회가 외면해온 수많은 얼굴과 누락한 목소리를 옮겨 적는 일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책 ‘날씨와 얼굴’(위고)은 이 같은 고민을 묶어낸 그의 첫 칼럼집이다. 지난 2년간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다시 쓰고, 새로 쓴 글을 더해 엮었다. 고통, 차별 부조리를 꼬집은 목소리는 저항의 글로 읽힐 수 있지만, 이 작가의 글은 투쟁과는 결이 다르다. 단호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다정함의 연속이다. 함부로 예단하지 않고, 비관하지 않으며 타인을 통과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간다. 이른바 ‘이슬아스러움’, ‘이슬아식 글쓰기’다.
이슬아는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다. 등단 한 경력은 없지만, 지금까지 12권의 책을 펴냈다. 2013년 단편소설 ‘상인들’로 데뷔한 이후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발표해왔다. 대학 시절에는 잡지사 기자, 누드모델, 웹툰 작가 등 독특한 이력도 쌓았다. 그가 작가로 유명세를 떨친 건 2018년 시작한 구독형 메일링 서비스 ‘일간 이슬아’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다. 학자금 대출을 벌고자 구독료 1만원을 받고 한 달에 20회, 편당 500원에 글을 연재했다. 기성 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독자를 모아 출판계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10대들을 가르치는 글쓰기 교사로도 일했다. 2019년엔 헤엄출판사를 직접 차렸다.
이번 칼럼집 역시 작가의 너른 시야를 보여준다. 공장식 사육으로 고통받는 동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장애인, 열악한 환경의 택배·청소노동자, 발붙인 땅에서 싸워야 하는 이주여성까지… 그의 마음에 걸렸던 얼굴들을 고루 비춘다. 각종 자료와 법안, 통계, 국회 국정감사 영상까지 꼼꼼히 챙기는 품도 들였다.
이어 “정치가 왜 나와 상관이 있는지, 우리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신경 써서 글을 쓴다”면서 “내 글이 더 정치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도 했다.
냉소하는 태도는 늘 경계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기사와 같이 라디오를 듣다가 낙태죄 이슈로 열띤 토론을 하는 식이다. 이 작가는 “그 와중에 서로의 생각을 물어보고 서로의 배경을 듣고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헤아리면서 어느 정도 결론에 도달하는 때가 있다”며 “언제나 타인을 헤아릴 힘을 남겨 놔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신념을 잃지 않고 용기를 내야 할 때는 동지를 떠올렸다. “제가 늘 상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때로 한심하고 게으르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용기가 나더라고요. 그리고 동지들이 옆에 있는 것도 중요해요. 저 같은 경우는 글쓰기 모임에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동지들을 만났어요. 함께 싸울 수 있는 친구들이죠.”
앞으로도 정치적 글(칼럼)을 계속 쓸 작정이다. “제 첫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의 드라마 판권 계약서에 사인만 남겨놓은 직전 상황인데요. 계약을 해도 반 정도는 엎어진다고 하는데, 계약하면 각본을 직접 쓰게 될 확률이 높아요. 그리고 산문집을 한 편 더 낼 예정이고요. 좋은 글을 쓰면서 오래오래 살아가고 싶어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작가생활을 하는 게 꿈입니다. 나중에 실버 북토크에서 봐요. 꼭.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