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갇힌 신인정치]"지역구 관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손발 묶인 원외위원장

원외위원장 3인 하소연 들어보니
현역에겐 허용된 지역사무실·후원금 모금이 다 불법
"기본적인 정치활동마저 막아..신인 나오기 힘들어"
내년 총선 앞두고 정당법·정자법 개정 요구 높아져
  • 등록 2019-02-26 오전 6:00:00

    수정 2019-02-26 오전 6:00:00

허영 더불어민주당 춘천지역위원장 겸 강원도당위원장이 지난 20일 춘천 사농동·후평2동 척사대회를 찾아 지역민들의 현안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허영위원장 제공)
[이데일리 이승현 김겨레 기자] 김철근 바른미래당 구로갑 지역위원장은 아침이면 집을 나와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만난다. 원외(국회의원 아닌 지역위원장) 신분이기 때문에 사무실을 둘 수 없어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3~4번씩 한번에 14~15km 정도를 걸어다니면서 주민들과 인사도 하고 가게를 들러 얘기도 듣곤 한다. 김 위원장은 이 행사를 ‘김철근의 구로걷기’로 명명했다. 그는 “요즘엔 날씨가 추워 하얀 롱패딩 입고 북극곰처럼 다니고 있다”며 “현행 선거법상 원외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이렇게 무작정 다니면서 주민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외의 설움..사무실 운영도 후원금 모금도 불가

내년 4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국회 입성을 노리는 원외위원장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하지만 의욕에 비해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에서 원외위원장들의 손발을 꽁꽁 묶어놔서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사무실이다. 현역의원은 지역에 사무실과 직원을 두고 운영할 수 있는 반면 원외들은 사무실 운영을 할 수 없다. 이런 탓에 일부 원외들은 김철근 위원장처럼 집에서 출퇴근을 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편법적으로 개인사무실이나 지인의 사무실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정치 활동을 하면 선거법 위반으로 적발될 수 있다. 또 현역의원들이 보좌진을 2명까지 지역사무실에 상주시키면서 운영하고 있는 것과 달리 원외는 사무실을 운영하더라도 유급 직원을 채용할 수 없다. 다만 자원봉사자만 둘 수 있다.

원외는 정치후원금 모금에서도 현역에 비해 차별이 크다. 현역들은 평상시에도 선거가 없는 해에는 연간 1억 5000만원까지,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지만 원외들은 평소에는 후원금을 받을 수 없고 선거가 있을 때만 120일 전 예비후보 자격을 가졌을 때 1억 5000만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이밖에 원외는 지역에서 명함을 돌리는 것도 활동 보고서를 나눠주는 것도 불법이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허영 더불어민주당 춘천시 지역위원장은 “지역활동을 하려면 여러모로 지역주민 소통 자금이 들어가는데 지금은 개인 돈만 써야 하기 때문에 몸과 열정으로만 활동하고 있다”며 “반면 현역은 세비를 받는데다 후원금 모금을 할 수 있고 의정보고회나 지역 토론회 등도 열 수 있어 원외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하소연했다. 박용찬 자유한국당 영등포을 당협위원장 역시 “원외 위원장들은 정상적인 정당활동, 정치활동도 하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에 있다”며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에 찬성하고 지지하지만 기본적인 정치활동마저 가로막는다면 새로 입문하는 신인들이 정상적인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신인이 나오기 힘든 환경을 만들게 된다”고 꼬집었다.

김철근 바른미래당 구로갑 지역위원장이 하얀 롱패딩을 입고 지역구를 돌아다니고 있다. (사진=김철근위원장 제공)
정자법·정당법 개정해 현역과 원외 차별해소해야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현역과 원외의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04년 ‘돈 먹는 하마’로 불리며 일명 오세훈법에 의해 폐지됐던 지구당 부활과 원외들도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지금 원외위원장들은 대부분 편법으로 지역구 관리를 하고 있어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면 누구든 편법·불법 증거 찾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판이 교도소 담벼락을 걷고 있는 듯하다”며 “지구당 관리를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야가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하다. 현역들이 다음 총선에서 자신들과 경쟁할 원외들에게 좋은 일을 해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노회찬 전 의원 사건이 났을 때 반짝 법 개정 필요성이 대두됐을 뿐 시간이 지나고 여야가 총선 준비 체제에 돌입하면서 정치신인에게 길을 터주자는 정치개혁 과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현역들에게 원외들을 위해 법을 고치라고 하면 움직이지 않을 게 뻔하다”며 “현역들이 요구하는 정치후원금 한도 상향 등을 함께 넣어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박용찬 자유한국당 영등포을 당협위원장이 지역의 시장을 찾아 상인과 함께 얘기를 나눈 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박용찬위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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