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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지금 원장님이 수술실에 입장하셨습니다. 수술 시간은 총 40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지난해 12월28일 징검다리 휴일을 앞둔 금요일 밤. 서울 강남구 A성형외과에서 광대축소 성형수술을 받는 이모(29)씨의 수술 장면을 손바닥 크기 만한 태블릿 컴퓨터를 통해 참관했다. 이 병원은 환자 동의를 받아 보호자에게 수술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해 준다. 보호자는 수술실 천장에 설치한 카메라(웹캠)를 통해 수술 장면을 지켜볼 수 있다. 세세한 수술 장면까지 볼 순 없어도 의사의 동선과 얼굴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수술을 마친 이씨는 “환자를 마취시킨 후 대리수술하는 병원이 있다는 얘기에 불안해 웹캠으로 수술 참관이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겨울방학과 휴가시즌에 접어들면서 성형외과를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대리수술과 마취 중 성희롱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잇따르면서 환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 환자들은 녹음기를 직접 들고 수술실에 들어가거나 웹캠을 설치한 병원을 찾아나서고 있다.
하루 평균 10건 안팎 성형 수술 민원…환자 “의사 못믿겠다”
보통 겨울 방학과 설 연휴 등이 몰려 있는 1~2월은 성형수술 성수기로 여겨진다. 서울 강남구 V성형외과 관계자는 “1년 중 수술이 가장 많은 달은 1월과 2월”이라며 “방학과 연휴 등이 몰려 있다는 점과 여름보다 겨울에 수술 회복이 빠르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형 수술을 앞두고 대리수술과 마취 중 성희롱 등 일부 의사의 일탈행위를 걱정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이달 초 가슴 성형 수술을 했다는 권모(23)씨는 “마취를 하고 나면 수술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어떤 대화를 하는지 또는 다른 의사가 대리 수술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친구에게 웹캠으로 수술 장면을 지켜보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혹시 몰라 새끼 손가락 손톱의 반만한 크기의 소형 녹음기도 단추에 부착해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작년 대리수술로 뇌사사고…전신 마취 후 여성 환자 성추행도
대리수술 논란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당시 부산시 한 정형외과의원에서 의료기기업체 직원이 대리 수술을 해 환자가 뇌사에 빠지는 사건 발생했다.
물론 성형외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유명 성형외과 B원장은 지난 2013년부터 1년간 자신이 직접 수술할 것처럼 환자를 속인 뒤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맡겼다. 이런 수법으로 B원장이 대리 수술을 맡긴 환자는 33명에 달했다. 결국 B원장은 2017년 해당 환자들에게 8000만원대의 배상액을 물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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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캠 설치와 수술실 보호자 참관 등 자구책 마련 병원 등장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자구책을 마련하는 병원들도 등장하고 있다. 웹캠 설치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수술실에 보호자를 대동을 허용하는 식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G성형외과는 환자의 동의 아래 보호자에게 웹캡을 통한 수술 참관을 허용했다. 실제 서울 시내 성형외과 중 웹캠을 설치한 병원은 10곳 내외로 추정된다. G성형외과 관계자는 “대리 수술 논란이 있는만큼 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웹캠을 권장하고 있다”며 “의사들도 의심을 받는 것보단 웹캠 참관을 허용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수술실에 보호자 참관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 T성형외과는 “병원이 가지고 있는 웹캠은 1개밖에 되지 않아서 수술 일정상 웹캠 사용이 어려울 때가 있다”며 “환자 동의 아래 보호자의 수술실 참관을 허가할 때가 있으며 특히 수술이 몰리는 1~2월에는 이런 경우가 더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환자들은 의사와 환자 간 신뢰 회복을 위해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등 병원들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성철 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일부 병원들의 자구책이 있지만 병원 전체로 그 노력이 퍼졌다고는 볼 수 없다”며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등으로 병원에 대한 환자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