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선분양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정치권이 나섰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과 윤영일 의원이 지난해말과 지난달 후분양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얼마 전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후분양제 관련 연구용역에 나서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경실련은 “후분양제를 의무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후분양제는 말 그대로 건설사가 집을 거의 다 지은 뒤 분양하는 제도다. 소비자가 지어진 아파트 외관이나 마감재 등을 직접 확인하고 살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하지만 후분양제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2004년 후분양제 활성화 방안 로드맵까지 마련했지만 그 이후 유야무야된 것도 다 이런 연유 때문이다.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건설사는 그간 입주 예정자에게서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받았던 건설 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한다. 금액 규모가 만만찮아 금융권에 손을 벌릴 공산이 크다. 금융기관 대출에 의존하게 되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늘어난 금융비용은 결국 분양가에 얹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책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소비자들은 싸게 집을 구입할 기회를 잃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분양가 상승과 함께 짧은 기간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지금은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공사 기간(통상 2~3년) 동안 조금씩 돈(중도금)을 냈지만, 후분양제에선 짧게는 몇 개월 안에 비싼 집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후분양 찬성자들은 후분양이 분양권 불법 전매와 투기를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다. 후분양이 시행되면 분양과 완공 시점 차이에서 파생되는 분양권 전매시장이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투기 행위가 선분양제 때문인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장기 저금리와 투자처 부재가 더 큰 원인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후분양 아파트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후분양 방식으로 아파트를 지어 파는 건설사들이 있다. 결국 선분양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시장 여건에 맞춰 선택한 거래 형태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분양·후분양 논의는 크게 실익이 없어 보인다. 그냥 시장에 맡기면 될 일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섣불리 후분양제를 강제하는 것은 소비자와 사업자에게 모두 위험한 선택을 강요할 뿐이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시장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