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예산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마무리 작업을 앞두고 새로운 ‘오더’가 떨어져서다.
발단은 정치권이다. 여야 3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정부와 ‘제3차 여·야·정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를 열고 이번 추경 예산 약 11조원 중 1조원가량을 한국수출입은행에 현금 출자하기로 합의했다.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건전성 악화 우려가 커진 국책은행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애초 정부는 오는 9월 말까지 수은에 공기업 주식 1조원을 현물로 출자하고, 수은과 KDB산업은행 현금 출자액은 내년 본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었다. 비상시에 대비해 한국은행과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이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지원하는 최대 11조원 한도 ‘자본확충펀드’도 만들어놨다. 그러나 정치권은 한은이 돈 찍어 구제금융 하겠다는 걸 곱게 보지 않는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 나쁜 사례”라며 “한은 팔을 비틀 게 아니라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경 11조원 중 정부 주머니엔 4조원뿐
문제는 돈이다. 당장 수은 현금 출자 등을 반영하면 정부 의도대로 쓸 수 있는 돈이 반 토막 난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11조원을 조금 모자라는 전체 추경 예산 중 지방재정교부금과 교육재정교부금에 4조원, 기존에 발행한 국채 상환에 1조~2조원, 수은 출자에 1조원 내외 등 3가지 항목에 6조원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집행한 세 차례 추경액 중 모자란 세수를 메우는 ‘세입 결손 보전액’을 제외한 순수 정부 지출(세출) 확대 규모는 올해가 9조원가량으로 가장 크다. 정부 주머니에 세금이 넘쳐나 세입 구멍을 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013년 추경 때는 총 17조 3000억원 중 세입 결손 보전액을 뺀 5조 3000억원, 지난해에는 11조 6000억원 중 6조 2000억원을 지출 확대 목적으로 썼다.
하지만 실제 정부 뜻대로 쓸 수 있는 금액을 따져보면 사정은 정반대다.
현행법상 중앙정부는 초과 세수 중 관세·교통세 등을 뺀 내국세의 약 40%(지방교육재정교부금 20.27%·지방교부세 19.24%)를 지방교육청과 지자체에 나눠줘야 한다. 지방교육청이 올해 편성하지 못한 누리과정(만3~5세 무상보육) 예산이 현재 1조 1161억원에 이른다. 서울시교육청 등은 정부가 내주는 추경 예산을 지방채 상환에 쓰겠다고 벼르고 있다. 빚 갚는 데 돈이 잠기는 셈이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지자체로 내려보낸 돈도 원칙상 중앙정부가 이래라저래라 쓰임에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성장률 2.8% 밑돌 가능성 커져
이에 따라 올해 목표 성장률 달성에 먹구름이 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정부가 추정하는 재정 지출 승수는 0.49다. 재정 지출을 10조원 늘리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4조 9000억원 증가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GDP는 약 1559조원이다. 재정 4조원(GDP 1조 9600억원 증가)을 풀어 끌어올릴 수 있는 성장률은 0.1% 정도에 불과하다.
주요 기관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연일 낮추는 것도 이런 걱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3.2%에서 3.1%로 낮췄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추경 효과를 반영해도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2.5%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경제 성장률을 전망할 때 전제하는 세계 성장률이 낮아졌고 추경액도 이것저것 빼니 지출 규모가 반으로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올해 성장률이 정부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추경 예산 외에도 공기업 투자·정책 금융 지원 확대 등을 통해 10조원 이상 재정 보강을 할 것”이라며 “지방으로 내려가는 돈도 추경 취지에 맞게 쓰도록 독려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