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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970년대 유럽 미술계. 색채와 구상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회화가 개념미술이나 표현 자체를 단순화·최소화한 미니멀리즘에 밀려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었다. 이즈음 ‘트랜스 아방가르드’를 내세운 이탈리아 출신 화가들이 인간적인 붓질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낸 ‘신표현주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예술을 창작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닌 표현 자체에 중점을 두는 작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배경지식과 지적 훈련을 필요로 하는 전위적인 작품과는 달리 신표현주의는 관람객의 머리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색채와 이야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표현방식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추상 거부한 ‘트랜스 아방가르드’의 거장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키아, 환상과 신화’ 전은 신표현주의의 선두주자인 산드로 키아(69)의 작품을 망라한다. 엔초 쿠키나 프란체스코 클레멘테와 함께 이탈리아 트랜스 아방가르드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키아의 회화와 드로잉 107점을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다.
1946년 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인 키아는 1962년부터 7년여간 피렌체의 미술학교에서 프레스코와 조각을 공부했다. 1970년 로마 근교에 정착한 키아는 개념미술이나 행위예술에도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림으로 가득 찬 세상은 한계와 경계가 없는 자유의 세상”이라며 이내 작업의 숙련성과 대상의 표현을 중시하는 고전적인 미술양식으로 전향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한 현대미술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다만 전통회화처럼 구체적인 스케치에 세밀한 색상을 집어넣기보다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회화를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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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는 생존 화가인데다가 국내에는 트랜스 아방가르드에 대한 소개가 활발하지 않아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키아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다르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영국 런던 테이트갤러리, 독일 쿤스트할레 빌레펠트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상설전시 중이다. 독일의 자동차회사인 BMW의 아트카 컬렉션에 참여하기도 해 상업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외국 공식작가로 선정돼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화사한 색감과 힘있는 붓질로 표현한 ‘유머’
키아 작품의 특징은 유머다. 심각하고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날카롭고 비판적으로 끄집어내는 작품은 보기가 어렵다. 100호가 넘는 대작에서는 화사한 색감과 힘이 넘치는 붓질이 두드러진다. 대담하고 원색적인 채색은 살아 있는 존재의 생명력을 강조한다. 여기에 ‘나를 구조해줘요’ ‘레다와 백조’ 등 그리스·로마 신화 혹은 고대 올림픽 속 영웅담을 소재로 한 작품도 많다. 덕분에 건장한 남성과 풍만한 여성의 여유로운 모습이 넘쳐난다. 예술가 특유의 신경질과 예민함은 감지되지 않는다. 본인 소유의 와인농장을 가지고 있을 만큼 생활이 부유하다고 하니 그 덕일 수도 있다.
107점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연 ‘키스’ 연작이다. 2009년부터 발표한 ‘키스’ 연작 가운데 9점이 나란히 걸렸다. 9점을 한꺼번에 전시하는 건 아시아에선 처음이다. ‘키스’ 연작은 키아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그리기 시작해서인지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다. 하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입 맞추는 연인들의 찰나는 뜨겁고 농익었다. 단순하면서도 드라마틱하다. 인생의 고통보다 환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작가의 시선이 충분히 녹아 있다. 10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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