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변호사는 사악하지 않다. 그는 상대방 의견에 모순이 있는 지를 알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선의의 악역’이나 진배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카톨릭교회는 새로운 성인 후보를 천거하면 그의 성품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악마의 변호사를 임명하는 전통을 400여년 이상 지켜왔다.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악마의 변호사는 사실 우리의 오랜 역사의 한 단면이다. 세종대왕은 어전회의 때마다 예조판서 허조(許稠)를 참석시켰다. 허조는 회의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품을 지녀 대신(大臣)들이 기피한 인물이었다. 세종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허조를 회의에 참석시킨 것은 그를 통해 대신들이 빠질 수 있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취임 2주년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공과(功過)를 평가하고 남은 3년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떠안고 있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인(人)의 장막’에서 벗어나 민심 풍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눈과 귀를 틔워줘야 한다.
대통령이 예스맨이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들에 둘러싸여 국민의 어려움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쓴소리와 때로는 반대 의견을 가감없이 개진하는 참모진이 있어야 한다. 최근 임명된 이완구 국무총리와 차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총리가 취임의 변(辯)에서 대통령에게 쓴소리 못하는 총리는 존재 의미가 없다며 자신이 악역을 맡을 의향이 있음을 내비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는 칭찬만 받으면 좋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의사결정의 첫 번째 원칙은 반대 의견 없이 최종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는 기업은 물론 국가 운영에도 도움을 주는 금과옥조가 아닐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