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베이징(北京)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중국 IT(정보기술) 업체 레노버(lenovo·중국명 聯想)의 홍보관. 개관식에 이어 내외신 기자회견에 나선 양위안칭(楊元慶) 레노버 회장의 목소리는 자신만만했다.
레노버는 4년 전인 2004년 50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내고 중국 기업으로서는 처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레노버의 연간 매출액은 30억 달러를 밑도는 수준이었다.
중국 내부에서조차 "터무니없는 도박"이라는 우려가 팽배했었다. 하지만 양 회장은 "삼성도 올림픽 마케팅을 통해 한국의 가전업체에서 세계 일류 브랜드로 도약하지 않았느냐. 글로벌 브랜드가 되려면 올림픽 마케팅은 필수"라며 밀어붙였다.
양 회장의 고집은 적중하고 있다. 레노버는 베이징올림픽을 맞아 국제적인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하는 등 올림픽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매출액과 이익이 급상승하면서 올해 포천(Fortune)지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도 처음 진입
◆베이징 뒤덮은 레노버 광고판
레노버는 버스 정류장과 올림픽공원으로 가는 대로 주변 등 요지에 1000개가 넘는 옥외광고판을 내걸었다. 이층버스 65대를 포함해 레노버의 광고판으로 도배를 한 500대의 시내버스도 시내를 돌고 있다.
이런 광고 공세는 올림픽 현장을 중계하는 전 세계 방송에 레노버 브랜드를 노출시켜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고도의 스포츠 마케팅 전략이다. 심지어 올림픽을 보도하는 중국 CCTV의 앵커 앞에도 레노버의 노트북 PC '아이디어패드'가 놓여 있다.
레노버는 올림픽에 맞춰 미국, 유럽, 호주, 인도 같은 핵심 시장에서 대대적인 광고 공세도 펼치고 있다. 제랄딘 칸 레노버 커뮤니케이션 부장은 "인도 시장의 브랜드 인지도가 지난해 42%에서 올해 94%로 높아지는 등 세계 각지에서 올림픽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번 올림픽을 통해 레노버는 중국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키·삼성이 성공 모델'
1984년 6평 남짓의 중국과학원 계산기연구소 실험실에서 직원 10명의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레노버는 그동안 승승장구를 거듭해 왔다.
초기에는 IBM PC를 중국시장에 들여와 팔았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독자 브랜드 PC를 내놓았고 2000년에는 아시아 최대의 PC업체에 등극했다. 2005년에는 12억5000만 달러에 IBM의 PC 부문을 인수하면서 세계 3대 PC업체에 올라섰다.
그러나 레노버의 고민은 아직 전체 매출의 40%를 중국 안에서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레노버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에 뿌리를 둔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마케팅 비용이 선진국 업체에 비해 3~4배 더 드는 '차이나 디스카운트' 현상이 세계시장 진출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레노버는 이런 핸디캡 극복을 위해 삼성의 전례를 벤치마킹한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IBM의 PC 부문 인수와 올림픽 스폰서 참여도 이 같은 전략이다. 또 PC 부문을 바탕으로 휴대폰과 프린터 등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해 나가는 점도 삼성과 '닮은꼴'이다.
허병희 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장은 "나이키가 1984년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됐고, 삼성도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지속적인 올림픽 마케팅을 통해 세계시장에 자리 잡았다"며 "중국 정부의 지원에다 기술력도 갖추고 있어 레노버가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