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정부부채 부담 日…타산지석 삼아야

[이경근 칼럼-세상 속 재정정책 이야기]
  • 등록 2024-07-06 오전 6:00:00

    수정 2024-07-06 오전 6:00:00

[이경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일본의 세출 규모는 199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4.7%인 69조 3000억엔이었으나 2022년에는 GDP 대비 23.5%에 해당하는 132조 4000엔을 기록했다. 이와같이 세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세수 증가율은 저조해서 일본의 재정수지는 1992년 이후 30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국채발행으로 조달했다. 신규 국채 발행이 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중(공채금 비중)이 1990년 8.8%에서 2022년 32.8%로 크게 확대됐다. 2010년 42.1%를 기록한 공채금 비중은 2013년 이후 소폭 하락하면서 30%대 수준을 유지했으나,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대응 관련 부양책 실시로 58.8%까지 상승했다가 그 후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공채금 비중 하락세를 유지한 결과 2022년 32.8%로 하락한 것이다.

신규 국채발행이 지속되는 가운데 차환채 발행액이 누적되면서 국채발행 잔액은 1990년 166조엔(GDP 대비 36.8%)에서 2022년 1043조엔(현재 환율 기준 8959조원, GDP 대비 186.1%)으로 5배 이상 확대됐다. 이에 따라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2년 기준 260.1%로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2019년 대비 2022년 정부부채 비율 증가폭은 주요 선진국들보다도 훨씬 높은 23.7%를 기록했다.

2022년 기준 일본의 정부부채 비율은 GDP의 260.1%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OECD 평균(137%)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자료=기획재정부)
일본의 정부부채 급증 요인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된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그 주요 원인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경기침체에 빠졌다. 물가하락이 고착화되면서 명목 GDP 성장률이 낮아지고, 이는 세입 감소로 이어져 재정건전성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장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대규모 재정지출과 감세정책을 반복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경기회복 효과는 일시적인 데 그친 반면, 막대한 국채 발행으로 인해 정부부채는 계속 늘어나게 됐다. 다시 말해 지속적으로 세수가 줄어들고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지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재정적자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다.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연금과 의료비 등 복지지출은 크게 늘어나 재정에 큰 부담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한편 재정건전화를 위한 증세나 지출 삭감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나라의 빚을 메우기 위해 더 빚을 내는 방식의 재정운용이 관행처럼 굳어지게 됐다. 이처럼 장기 경기침체, 인구구조 변화, 디플레이션, 경기대응 정책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계속 높아져 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2022년 기준 일본의 정부부채 비율은 GDP의 260.1%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OECD 평균(137%)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이 지속되는 가운데 향후에도 정부부채 누적 추세를 반전시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우리나라에게 주는 시사점


일본의 사례는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인해 사회복지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더욱이 조만간 초고령사회로 전환되면 경제 저성장이 지속되고 이에 따라 지금보다 세수입 확보가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재정 계획을 합리적으로 수립하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재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줄이는 한편, 세수입 기반 확대를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사회보장제도 개혁, 조세제도의 합리적 개편, 공공기관 효율성 제고 등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일본의 고령화 문제는 심각하지만, 고령화는 서유럽의 상당수 국가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일본이 다른 OECD 국가들 보다 훨씬 많이 정부부채가 누적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사례는 아무리 잘 나갔던 국가라도 지속적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재정 파탄에 직면하는 것은 시간 문제임을 보여준다.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의 경제정책 우선순위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에 둬야 할 것이다.

일본도 그동안 재정개혁을 통해 부채 규모를 줄이려는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적 반발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재정개혁 시도가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일본 사례는 재정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대타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와 재정 관련 국책연구기관들은 국민들에게 우리나라의 미래 재정 상황의 심각성을 수시로 알려야 한다. 그리고 연금개혁을 포함한 재정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도 일본의 재정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무책임한 재정지출 추진을 자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21대 국회가 지난해 가을에 국민연금 개혁을 합의하지 못하고 22대 국회에 그 공을 떠넘겼다는 점을 상기하고, 22대 국회에서 조속히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재정이 구축될 수 있도록 정치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이경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소득세제과장, 국제조세과장, 법인세제과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재정위원회 사무국 주무행정관, OECD 경제산업자문위원회(BIAC) 위원 △유엔(UN) 조세전문가회의 부의장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한국조정위원 △UN 조세전문가 회의 이전가격 소위원회 민간위원 △국무총리실 자체 평가위원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기획재정부 국제거래가격 과세조정심의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조세협회(IFA Korea) 이사장 △법무법인 율촌 조세자문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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