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는 재정적자가 확대되며 풀린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상당기간 자산인플레이션(asset inflation)이 기승을 부렸다. 집 없는 설움을 떨쳐버리려 ‘영끌’ ‘빚투’가 이어지며 문제가 잉태됐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며 더 큰 폭으로 집값이 오르면서 저소득층의 거주이전 자유가 희미해졌다. 그와 반대로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일반물가는 상승하고 자산가격은 반대로 하락하는 인플레이션 속의 디플레이션 현상이 벌어져 한국경제는 방향 감각을 잃었다. (물가)인플레이션과 엇갈리는 (자산)디플레이션이 복합적으로 벌어지며 각 경제주체들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기축통화국의 정책변화를 주시하게 됐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현상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열심히 살기보다는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 얻으려든다. 두 가지 사태가 복합으로 일어나는 틈새에서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이 엇비슷해지면서 전세보증금 사기가 불거져 의지할 데 없는 경제적 약자들을 절망으로 이끌었다. 먼저, 문재인 정부는 입으로는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고 외치면서 실제로는 나랏돈을 마음 내키는 대로 풀어대며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거품을 일으켰다. 다음, 자산시장 거품(?)이 잠잠해지려는 기미가 뚜렷한 국면에서 부동산 가격이 50% 정도 하락해야 한다며 엄포를 놓았다. 주택 260만 가구를 새로 공급하겠다고 호언장담해 시장 경착륙을 부추겼다.
거품이 형성되는 시기에 거품을 더욱 조장하는 정책을 쓰고 꺼지는 국면에서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오르막에서는 더 오르도록 유동성을 퍼붓고 반대로 내리막에서는 더 빨리 미끄러지도록 윤활유를 바른 형국이다. 시장이 널뛰기 모양새를 보이며 불안감이 일었다. 부동산 전세사기 재앙은 시장가격 기능이 왜곡돼 나타나는 시장실패라기보다 정부에 의한 ‘정부실패’라고 봐야 한다. 국민소득 3만 5천 달러를 오래전에 넘어선 나라에서 집 없는 설움에다 자신의 잘못보다 우왕좌왕하는 정책과 제도 미비로 전셋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쓰라림을 어떻게 상상할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최종 책임은 정부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안정시키려는 정부의 역할은 무엇보다 화폐가치 안정화에 주력해야 한다.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은 가진 자의 자산 가격을 더욱 높이는 반면에 안 가진 자의 소득을 깎아내린다. 디플레이션은 자산 가격을 떨어트리고 일자리를 없애면서 경제적 약자를 더욱 절망으로 이끈다. 물가 상승이나 하락 정도가 심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화돼 결과적으로 사회적 적응능력을 약화시켜 성장잠재력을 시나브로 갉아먹는다. 생각건대, 향후에도 경기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유동성을 더 풀 수밖에 없어 돈의 가치는 더욱 하락할 게다. 한편에서는 빈 집이 넘쳐나는 반면에 다른 편에서는 지금보다 집값이 더 오르는 불균형이 걱정된다.
통화주의자 프리드만은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범죄보다 뭔가 잘못된 논리를 펴는 이들이 멋모르고 저지르는 폐해가 더 심각하다”며 통화팽창을 경계했다. 4~5년 전쯤 ‘소득주도성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한 경제관료는 “가을이 되면 경기가 좋아진다”고 예언했다. 가을이 와도 경기가 움직이지 않자 다시 봄이 오면 회복된다고 점을 쳤다. 봄이 와도 경기가 꿈틀거리지 않자, 가을이 오면 경기가 풀린다는 헛소리를 하다 낙엽 따라 가버렸다. 정책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며 돈을 풀어도 경기는 풀리지 않고 강남에 있다고 자랑한 그의 집은 날개를 달았다.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오면 봄을 알리지만, 초겨울 진달래 한 가지에 꽃이 펴도 봄은 오지 않는다. 이상기후로 핀 한 송이 꽃을 보고 봄이 곧 온다고 법석을 떨면서 어찌 경제 흐름을 논한다는 말인가? 내부자거래로 주식을 사둔 다음에 당해 주가가 급등한다고 소리치며 우쭐거린다면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