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제도를 합리화하겠다며 10일 입법 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재계는 강한 우려를 표했다. 동일인(총수)의 친족범위 축소와 사외이사 소유회사를 원칙적으로 대기업집단의 계열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등 다양한 규제 완화를 발표했지만, 속칭 ‘내연녀’인 사실혼 배우자를 친족에 포함하는 새 규제에 모두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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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다음 달 20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중 큰 이의신청이 없다면 법제처 심사를 거쳐 이르면 6개월 이후 시행령 개정을 공포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조항은 제4조(기업집단의 범위) 1항으로 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기업 총수 관련자에 포함했다. 이를 두고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는 소지가 있다”면서 “입법예고 기간 충분한 의견을 반영해 법을 세심하게 다듬는 등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률상 친생자 관계가 성립된 자녀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친족으로 보기로 한 부분은 법적 안정성과 일관성이 전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가 필요할 때마다 임기응변 차원에서 시행령을 고치는 것은 법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헤치는 것”이라며 “사실혼 배우자를 동일인 친족에 포함한 것은 이미 사실혼 관계가 드러난 기업에만 국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처럼 본인이 직접 사실혼 관계를 밝히지 않는다면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롯데그룹의 경우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에게 사실혼 배우자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씨가 있지만 이미 별세했고, 동일인이 신동빈 회장으로 변경돼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최태원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김희영 T&C 재단 이사장의 경우 이미 동일인 관련자로 분류돼 있어 새롭게 특수관계인에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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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또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현행 혈족 6촌·인척 4촌 이내에서 혈족 4촌·인척 3촌 이내로 축소하기로 했다. 다만 동일인측 회사의 주식을 1% 이상 보유하거나 동일인이나 동일인측 회사와 채무보증, 자금대차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는 예외로 뒀다.
이 밖에도 사외이사가 소유한 회사는 원칙적으로 계열회사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안에 대해서도 ‘반쪽짜리 개정안’ 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외이사 지배회사가 임원독립경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계열회사로 편입하도록 한 단서조항 때문이다. 임원독립경영 요건은 △임원선임 전부터 지배할 것 △임원측이 동일인측 계열사에 3%(비상장사 15%) 미만 지분 보유 △임원겸임·채무보증·자금대차 없을 것 등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재계에서 사외이사 섭외가 힘들었던 점이 사외이사 소유 회사정보를 공개해야했던 것인데 원칙적으로 제외해준다고 하면서도 단서조항을 단 것은 결국 사외이사 소유의 회사의 임원독립경영 요건 충족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그 회사를 들여야 봐야하는 것이어서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동일인이 사외이사를 섭외 할 때 3%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일부러 조사하지 않아도 보통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며 “그동안 임원독립경영 신청을 통해 사후적으로 계열사에서 제외한 방법보다는 기업에 수월한 방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