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흙으로 사람 빚은 상상이 AI가 되는 과정

인공지능과 흙
김동훈|388쪽|민음사
  • 등록 2021-03-31 오전 6:00:00

    수정 2021-03-31 오전 6:0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낯선 제목이다. ‘인공지능과 흙’이라니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양고전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인문학자인 저자는 지금 가장 트렌디한 용어인 인공지능과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는 흙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물질성’이다.

저자가 물질성이라는 주제를 꺼낸 이유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물질과 감각이라는 생각에서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상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되는데, 이 틈을 메우려는 무의식적인 몸부림에서 인문학이 물질과 감각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상상과 현실화의 문제를 시대별로 되짚어 보면서 대안적 인문학, 이른바 ‘포스트인문학’을 화두로 꺼낸다.

30개의 주제로 쓴 글들은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신화적 상상이 인공지능과 같은 현실의 물질로 어떻게 변신해가는지를 보여준다. 몇 천년 전 고전에서 이미 인공지능에 대한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황금비서’다. “감정을 지닌 지능, 음성, 힘이 장착되어” 있는 황금비서는 그야말로 고대인이 상상한 인공지능 로봇이다. 특히 “불멸의 신들에게 작품도 배워 알고” 있다는 묘사에서는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에 대한 상상력의 단초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피그말리온 신화에서는 “생명은 생명체에서만 나온다”는 고대인의 통찰을, 프로이트의 언캐니 이론과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에서는 육체의 상품화에 대한 저항을 엿본다. 이를 통해 인문학이 정신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물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정신이나 관념에 치우친 인간성이 아닌 자기 몸을 일상에서 재발견”하는 것에 ‘포스트인문학’의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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