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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존폐 위기에 놓인 지역경제를 살리는 하나의 대안으로 지역(고향)사랑상품권이 부상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무턱대고 발행만 늘렸다가 세금만 쓰고 장농 속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류에 편승해 시·군 단위 기초 지자체에 더해 광역까지 발행에 뛰어든데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 재정으로 충당하는 청년수당과 공공산후조리비 등도 지역화폐로 지급키로 결정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수요예측과 홍보,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상품권 발행이 자칫 혈세 낭비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뛰는 단속 위 나는 ‘깡’…지역 넓을수록 부정유통↑
고향사랑상품권은 보통 액면가보다 5~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싸게 사서 액면가로 교환할 수만 있다면 할인율 만큼의 시세차익이 가능하다. 즉, 액면가 10만원짜리 상품권을 9만원에 산 후 환전소에서 10만원에 바꾸고 싶은 유인이 생긴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깡(불법환전)`이다. 깡은 내가 가진 상품권으로 가맹점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현금으로 교환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할인을 적용하는 상품권 시장에는 크고 작은 깡이 늘 존재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고향사랑상품권과 마찬가지로 관 주도로 발행하는 전통시장에서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의 경우 불법유통으로 인한 가맹점 취소가 지난 2012년 7809건에 달했다. 이후 2013년 2189건, 2014년엔 389건으로 줄었으나 2015년도부터는 1547건으로 다시 크게 늘었다.
기초 지자체에 광역까지…상품권 난립 주의보
정부가 고향사랑상품권 발행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상품권의 난립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100개 지자체에서 2조원 수준의 상품권을 발행할 계획인데 주민의 지역 애착도가 상대적으로 뛰어난 시·군 단위 지자체뿐 아니라 경기도와 강원도, 인천시 등 광역 지자체까지 발행에 뛰어들면서 다양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무분별한 상품권 난립은 결국 혈세 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수요예측에 기반한 발행액 설정, 지역주민 모두가 사용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화폐로 자리잡지 못한다면 상품권 발행에 수반되는 할인액, 발행비용, 판매기관 수수료 등 부대비용이 모두 장농 속 애물단지로 인한 매몰비용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발행액이 2017년보다 줄어든 지자체는 전체의 약 30%인 20곳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조용히 발행을 접은 지자체도 6곳에 달한다.
청년수당·산후조리비도…시장왜곡·휴지조각 가능성
이밖에도 상품권 발행의 급증이 화폐시장을 교란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만에 하나 해당 지자체가 파산했을 때 지자체에서 발행한 상품권 역시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단 전문가들은 이런 우려는 기우라고 선을 그었다.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상품권 발행 주체인 지자체의 경제규모가 우리나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며 “소위 경제학자들이 제기하는 통화왜곡이나 시장교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휴지조각 가능성 역시 “발행액만큼 예산을 따로 편성해 현금으로 은행에 예치해두기 때문에 만약 지자체가 파산하더라도 상품권을 쓰지 못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에서 올해 2000억원 규모의 청년수당과 공공산후조리비를 지역화폐로 지급키로 한 것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성민(가명·25)씨는 “청년수당을 술집이나 대형 프렌차이즈 등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지역상품권으로 주는 건 엄연한 선택권의 침해”라며 “주민들에게 보편적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주려면 내가 내는 세금도 지역화폐로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지 않냐”고 주장했다.
최준규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화폐는 제대로 정착만 된다면 역외로 유출되는 소비를 해당 지역으로 되돌리고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활성화해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청년, 아동수당 등 전국단위의 보편적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쟁점이 존재하고 경기도의 경우 올해 지역화폐 발행·유통에 드는 비용이 도와 개별 시군 합산 약 20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과연 이 비용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 비용편익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