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형 구형에 처해진 박근혜 전 대통령

  • 등록 2018-02-28 오전 6:00:00

    수정 2018-02-28 오전 6:00:00

국정농단 사태를 야기함으로써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처분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이 구형됐다. 검찰은 어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 권한을 사유화해서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를 들어 박 전 대통령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1185억원의 벌금형도 함께 요청됐다. 앞으로 재판부의 최종 선고를 남겨놓고 있지만 이러한 검찰의 구형 취지만으로도 우리 헌정사를 얼룩지게 만든 오점의 크기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이 개인적인 실수와 판단 착오로 나라를 온통 혼란에 빠트렸던 만큼 중형 구형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민간인으로서 같은 혐의를 받는 최순실씨에게는 이미 징역 25년이 구형돼 20년 형이 선고된 마당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결심공판에도 끝내 출석하지 않음으로써 국민들의 실망감을 더했다. 국정 혼란을 자초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나름대로 불만이 없지야 않겠으나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지낸 입장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망각한 처신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대기업들에 대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을 강제한 혐의를 포함해 모두 18개의 혐의가 적용되고 있다. 물론 혐의에 따라서는 해석을 달리할 소지가 없지 않은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공소사실에 비춰 법리 적용이 모호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의도에 말려들면서 국정 질서를 크게 어지럽힌 사실 자체는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하기에 앞서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는 자세가 아쉽다.

중요한 것은 이번 공판을 계기로 우리 헌정사에 다시는 이러한 오점이 더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민들 각자가 각오를 다지는 동시에 국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사태에 처해서는 단호히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를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견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 여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헌법 개헌안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한 차례 위기를 겪고도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가적인 시련은 언제든 다시 닥쳐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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