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전세금을 지켜주는 전세보험 가입자가 부쩍 많아졌다. 일부 지역에서 역(逆)전세난 조짐이 나타나는 등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결과다. 그러나 다가구·다세대주택의 경우 전세보험에 가입하기가 쉽지 않아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시세 반영 못하는 추정시가…전세보험 가입 장벽
24일 전세보험을 파는 HUG와 SGI서울보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증 실적(보증하는 전세금 규모)은 3조 3967억원에 이른다. 이는 작년 상반기에 비해 3배 늘어난 규모다. 이미 작년 전세보험 총 보증액(2조6681억원)도 넘어섰다. 그만큼 ‘깡통전세’(집주인이 빚이 많아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세입자들의 근심·걱정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세보험 가입자의 대다수는 아파트·오피스텔로 다가구·다세대주택 등 기타 주택 임차인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다가구·다세대주택 임차인의 전세보험 가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세보험에 가입하려면 선순위 채권이 집값의 60%를 넘지 말아야 하는데, 이때 다가구·다세대주택은 공시가격의 1.5배를 시가로 추정한다. 문제는 공시가격을 1.5배 반영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부동산시장 상승기에서는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2005년 공시가 도입 당시 시세보다 낮게 매겨지면서 이후 공시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며 “향후 시세와 맞추려는 노력을 했지만 한꺼번에 상승률이 반영되면 재산세 등 세금 부담이 확 늘어나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공시가의 실거래가 반영율은 평균 50~60%이지만, 지역과 주택형태에 따라 약 2~3배까지도 차이가 난다.
보수적인 주택가격 산정은 보호받을 수 있는 전세금 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세보험은 선순위 채권과 전세금을 합한 보증금액이 추정시가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HUG는 다가구주택은 추정시가의 75%, 다세대주택은 80%로 더욱 보증 한도를 줄이고 있다.
서민 전세금 지키는 전세보험 취지 ‘무색’
HUG나 SGI서울보증은 다가구·다세대주택의 낙찰가율이 아파트보다 떨어지는 만큼 주택가격을 보수적으로 책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HUG 관계자는 “아파트는 시세의 90%까지 책정되는 반면 다가구·다세대주택의 낙찰가율은 이보다 낮다”며 “경매시장에서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더 줄어드는 만큼 더 엄격하게 심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아파트나 일부 오피스텔은 KB국민은행에서 매주 발표하는 시세가 있지만 다가구·다세대 주택은 공식적인 통계가 없어 공시지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다가구·다세대주택의 전세보험 가입 한도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설정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매정보회사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7월 전국 다세대·다가구주택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각각 83.9%, 79.9%에 달한다. 서울의 경우 다세대주택 낙찰가율이 90%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전세보험이 서민들의 목돈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당초 상품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지역마다 공시지가와 시세가 비슷한 곳도 있고 차이가 많이 나는 곳도 있다”며 “최대한 현실을 반영하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전세금은 서민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장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세보험이란
전·월세 계약이 끝나고도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보험사가 대신 지급을 보증하는 상품이다.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에서 각각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전세금보장신용보험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보험료는 보험 계약자 및 주택 유형에 따라 연 0.2~0.3%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