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이다]성과제로 철밥통 혁파?.."실적 올려도 승진 앞둔 선배에 양보"

SS등급 신설해 1000만원까지 성과급 격차 벌려
"실적 양보 강요 비일비재..성과급 확대 박탈감만"
유연근무제로 장시간 근로 차단.."현장 모르는 탁상행정 불만"
  • 등록 2016-04-08 오전 6:30:00

    수정 2016-04-08 오전 9:02:32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우리사회에서 선망의 직업인 공무원. 그러나 공직사회에 몸담고 있는 공무원들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고개를 흔든다. 정년을 다 채우고 퇴직하는 공무원이 10명 중 3명꼴이다. 민간보다는 월등히 높지만 기대이하다. 급여는 박봉에 버팀목이던 연금마저 깎였다. 그래도 공무원이다. 9일 열리는 9급공무원 시험에는 총 22만 2650명이 원수를 접수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전체 채용 규모는 4120명, 경쟁률은 54대 1이다. 최악 취업난에 고용불안 우려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100만 공무원의 세계를 분석해 봤다.[편집자주]

‘공직=철밥통’ 공식을 혁파하기 위한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의 인사정책이 잇따라 도입되면서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성과주의 문화 확산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공무원 성과평가급수 4단계(S·A·B·C)에 ‘SS’를 추가해 실질 임금 격차를 확대했다.

“실적올려도 승진 대상 선배에 양보”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5급 사무관의 성과급은 현재 △S등급 640만원 △A등급 460만원 △B등급 310만원 △C등급 0원 등이다. 인사처는 업무 역량이 탁월하면 파격적인 성과급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약속대로 올해 처음으로 S등급을 받은 사람 중 상위 2%(SS등급)에는 S등급 성과급의 50%를 추가해 지급했다. 성과급이 0원인 C등급과 비교하면 1000만원 가까이 더 받았다.

이같은 성과주의 문화 확산에 대한 공직사회의 저항은 심각한 수준이다. 첫번째 걸림돌은 성과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신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공직사회에서는 서열과 승진이 전부”라며 “연공서열이 중시되는 공직사회에서 공정한 성과평가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승진을 앞둔 선배에서 실적을 양보하라는 강요가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성과평가 결과에 따른 성과급 지급은 오히려 박탈감만 키울 뿐”이라고 말했다.

일부 부처에서는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SS등급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쉬쉬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 공무원은 “줄 잘 선 사람들이 주로 높은 등급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누가 봐도 열심히 잘한 동료가 나쁜 평가를 받기도 하는 등 줄세우기식 평가가 이뤄지는 한 성과평가에 따른 성과급 차등지급은 일할 의욕만 떨어트릴 뿐”이라고 말했다.

장시간 근로관행 개선? 현장 모르는 탁상행정 불만

인사처는 주당 40시간의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근무일과 근무시간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한 ‘유연근무제’를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면 하루에 12시간씩 3일을 근무하고 나머지 하루 동안 4시간만 근무하는 주 3.5일 근무도 가능해진다. 인사처는 이를 통해 2200시간에 이르는 공무원 1인당 연간근로시간을 2018년까지 1900시간대로 줄여 장시간근로관행을 개선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일-가정 양립은 물론 자기계발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함으로서 공무원들의 근무 만족도와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은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무원 성과상여금 제도를 전면 폐지하라’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지현 기자)
현장 반응은 신통치 않다. 현장 상황을 모르는 책상물림 정책이라는 것이다.

한 지방기초단체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원 C씨는 “업무시간에는 민원인 대응과 전화 상담으로 다른 업무를 할 시간이 없다”며 “결국 본 업무는 업무시간 이후에 야근을 하거나 개인 시간을 쪼개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충재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지자체 뿐 아니라 중앙부처 공무원들도 국회 등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만드는 등 잡무에 시달려 야근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며 “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일을 최소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 데 이런 조치는 없이 무조건 근무시간만 줄이라고 하니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 안정성 훼손 민간기업 ‘기웃’

아울러 정부가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소극행정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공무원에 대해서는 최대 파면까지 징계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인사처는 부작위, 직무태만 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공무원 뿐 아니라 지휘감독자도 징계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공무원의 최대 강점인 안정성마저 흔들리면서 공직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공무원은 세금 도둑이라는 전제를 깔고 바라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며 “주변에서 적지 않은 동료 선후배들이 민간기업 이직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황서종 인사처 차장은 “엄격한 처벌 뿐 아니라 공직사회의 사기진작을 위해 파격적인 보상체계와 특별 승급 등을 도입해 일하는 공무원에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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