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파워]'경청과 대화'로 중증 장애아 엄마들 고통까지 보듬다

모현희 서울시어린이병원장 "'세워주고 듣는' 리더쉽"
"동아시의 최고의 장애어린이 전문 공공병원이 목표"
  • 등록 2013-11-11 오전 7:00:00

    수정 2013-11-11 오전 7:00:00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모현희 서울시어린이병원장이 5일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병원 집무실에서 밝은 표정으로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시어린이병원은 국내에서 유일한 장애 어린이 전문 공공병원이다. (사진 = 김정욱 기자)
서울시가 운영하는 두 시립병원인 서울시어린이병원과 보라매병원은 최근 수차례 회의를 열었다. 한 중증 장애인 수술 문제 때문이었다. 어린이병원에서 20년 가까이 입원 중인 신모(남·36)는 허리가 마치 활처럼 휘어 얼굴과 다리가 거의 맞닿아 있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코에 생긴 종양이 얼굴과 뇌까지 번져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수술을 맡은 보라매병원 측은 “출혈 등의 문제로 수술 자체가 굉장히 어렵고 위험하다.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는 수술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어린이병원 측은 수술 강행을 요구, 신씨는 마침내 수술대에 올랐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신씨는 전보다 나아진 몸으로 어린이병원 자신의 침상으로 되돌아왔다.

모현희(50)서울시어린이병원장은 “사회에서 버려져 우리에게 온 아이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치료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병원을 1년째 이끌고 있는 모 원장을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병원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 곳은 국내 유일의 장애 어린이 전문 공공병원이다.

중증 장애아 ‘최후의 보루’ 지키는 소통의 리더십

어린이병원은 지난 1948년 창립돼 올해로 66년째를 맞았다. 모 원장은 병원이 지난 2006년 외부개방형 병원장 제도로 전환된 이후 취임한 첫 여성 병원장이다.

어린이병원엔 현재 11개 병동에 250명의 중중 장애 환자들이 입원해 있다. 70여명은 스무살을 넘긴 어른이지만 체형이나 지적 수준은 정상적인 어린이에 비해서도 떨어진다. 대부분 부모 등 보호자가 없는 무연고자로 갈 곳이 없어 이곳에 10년 이상 장기입원 중이다.

일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마지막으로 어린이병원을 찾는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영아들도 이곳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 치료를 받는다. 모 원장과 직원들은 병원이 중증 장애아의 마지막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자긍심을 갖고 있다.

“민간 병원에서는 (중증 장애인 어린이 치료가)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다 보니 공공영역이 할 수밖에 없어요. (민간에서는) 별로 관심도 없고 기피하는 측면도 있죠.”

그는 병원에서 19명의 의사와 128명의 간호사, 70명의 치료사 등 총 246명의 직원들을 이끌고 있다. 부모들조차 고개를 흔드는 중증 장애아를 돌보는 일에 병원 구성원들이 열의를 갖고 임할 수 있게는 하는 그만의 노하우는 ‘존중’과 ‘소통’이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간혹 어려움이 생기면 조직의 장으로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듣습니다. 병원 직원은 물론이고 외부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도 듣습니다. 우리는 아이와 그 부모에게 희망을 주려고 합니다. 직원들과 끊임없이 생각을 공유하면서 직원들에게 아이와 부모에 대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렇게 듣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일이든 병원 구성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갑니다.”

모 원장은 환자를 넘어 환자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 어린이병원은 어머니들이 쉴 수 있도록 도서관 등 공간을 마련하고 부모 교육 및 힐링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병원 운영에 환자 부모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도 갖추고 있다.

“저도 1남 1녀를 둔 엄마이다 보니 환자 엄마들을 보면 안타까움이 많습니다.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통이 많이 느껴집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엄마까지 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병원은 올해 서울시 산하 13개 시립병원 평가에서 1등을 차지했다. 보건복지부의 공공의료기관 평가에서도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목표는 ‘동아시아 최고의 장애아 전문 공공병원’

모 원장은 24년째 줄곧 공공의료인의 길을 걷고 있다. 1990년 서울 동작구 보건소에서 진료의사를 시작으로 자치구(양천구·광진구) 보건소장을 맡았고 시 보건정책과장 등 의료행정 경험도 쌓았다.

“(보건소가 맡는) 지역사회 보건의료는 제 성격에 잘 맞았어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들었거든요. 홀몸노인과 저소득측 가정 아이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에 보람을 많이 느꼈죠.”

그런 만큼 공공의료에 대한 그의 확신은 확고하다. 공공의료는 ‘분명한 존재의 이유’가 있고 ‘착한 적자’를 바탕으로 시민에게 좋은 혜택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확신을 갖고 모 원장이 취임이후 1년간 중점추진한 사업이 외래환자 확대와 병원 전문화이다.

어린이병원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보호자가 있는 중증 장애아를 대상으로 한 외래 치료와 재활이다. 이 역시 뇌성마비와 뇌병변, 자폐, 발달장애 등의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대상이다. 모 원장은 올해 외래환자 30% 확대를 추진해 현재 외래환자 수가 전년보다 26% 늘어난 상태라고 한다. 하루 평균 350여명이 찾아오고 있다.

병원 전문화를 위한 첫 발걸음은 삼성사회봉사단 도움을 받아 국내에선 처음으로 건립하는 발달장애 아동 치료를 위한 전문센터다.

“발달장애 센터는 국내 유일의 전문병원으로 발돋움하는 것입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케너디 크리거 연구소와 파트너십을 맺어 기술 노하우를 배우고 치료사 양성까지 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병원은 뚜렷한 공공성을 바탕으로 민간에서는 갖출 수 없는 전문성을 갖게 됩니다.”

어린이병원은 난치성 중증 장애아를 위한 집중치료센터, 자폐아 대상 발달장애센터, 뇌병변환자의 신체 재활을 돕는 재활센터, 장애아 구강진료센터 등 4개 센터를 설립, 육성할 계획이다. 장기목표는 ‘동아시아 최고의 공공 장애어린이 재활병원’이 되는 것이다.

다만 어린이병원과 같은 장애아 전문 공공병원 확대를 위해선 풀어야 할 숙제들이 적지 않다. 막대한 예산과 부지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장애아 전문 병원이 주변 주민들에게 여전히 기피시설로 인식되는 현실도 극복해야 한다.

이날 인터뷰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이들 자랑으로 끝을 맺었다. 한 음악가의 재능기부로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기 시작해 ‘레인보우’라는 밴드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발달장애 아동과 자폐아 등 40명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오는 12월 5일 서울시청에서 정식 연주회를 갖는다.

“우리 병원에 와서 봉사활동을 해보세요. 산책을 같이 하고 목욕을 시켜주면 됩니다. 부모가 되는 겁니다. 본인도 깨닫는 게 많을 겁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요.”

▲모현희 서울시어린이병원장 (사진 = 김정욱 기자)
▲모현희(50) 서울시어린이병원장

- 1963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서울 동작구 보건소 진료의사로 공중보건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양천구와 광진구 보건소장, 서울시 보건의료과장 등을 거쳐 2012년 10월부터 서울시어린이병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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