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희의 톡톡아트]`노하우`보다는 `노웨어`의 시대

“헤르메스형 예술가, IT업계의 억만장자들”
  • 등록 2012-07-08 오전 11:30:00

    수정 2012-07-08 오후 2:37:35

바람과 속도의 신 헤르메스
[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예술은 번역”이라고 말한다. 모든 예술은 기존의 역사와 문화, 생각과 담론 등 어떤 것이라도 자기식으로 번역해내는 작업이라는 말이다. `번역`이라는 말은 곧 `해석`이라는 말과 통한다. 해석학은 영어로 `헤르메노이틱스(hermeneutics)`이다. 그리스어로 `hermeneuein`은 라틴어로는 `interpretari`이고 설명, 언표, 서술, 해석, 통역을 의미한다. `Ho hermeneus`는 포고자, 사자(使者)를 뜻한다. 이 명칭들은 모두 헤르메스(hermes)로 소급된다. 헤르메스라는 이름에 그대로 사자, 매개자의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번역자 혹은 통역자야말로 매개자 혹은 전령사가 아닌가! 전령사를 고용할 수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권력과 권위를 가진 자, 신들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신들을 매개하는 자로서 헤르메스는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통상 예술가라고 부르는 부류에 가깝다. 진정한 예술가의 탄생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같은 르네상스 인물들로 간주한다면, 분명 그들이 신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거대한 조각 작품들을 두고 자신은 “그저 떨어내기만 할 뿐”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신의 분유물로서의 어떤 형상이 이미 대리석 안에 갇혀 있고, 자신은 신의 조력자로서 그 형상을 드러내는 일을 할뿐이라는 뜻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나 <천지창조>와 같은 작품을 보라! 도저히 인간이 만든 작품이 아닌, 절대적인 신성의 경지가 느껴지는 작품이 아닌가! 신의 뜻을 가장 잘 전달해주는 전령사, 즉 신에 봉사하는 모든 예술가야말로 또한 헤르메스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기독교미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서양미술의 역사 속에서 예술가가 신의 대리자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보티첼리, 프리마베라-봄, 1482년
헤르메스의 역할을 가장 멋지게 은유한 한 점의 매혹적인 그림이 있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1481년)이다. 그 무엇보다 메디치 가문을 위해 그려진 이 그림은 메디치 이데올로기를 우의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겨울 숲의 한복판에서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힘차게 바람을 불고 있다. 제피로스는 님프 클로리스를 겁탈하여 꽃의 계절인 봄을 잉태시킨다. 봄의 전령사가 된 클로리스는 마침내 봄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한다. 여기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왼쪽의 장면! 헤르메스가 두 마리의 뱀이 새겨진 ‘카두세우스의 지팡이’로 봄의 하늘의 먹구름을 휘젓고 있다. 짙은 먹구름이 낀 곳에 바람이 갑자기 불면 곧 비가 올 것이란 것을 직감한다. 이 그림은 바로 메디치 가문이 담당해야 할 사명과 역할을 담은 것이다. 다시 말해 보티첼리는 교역, 거래, 상업의 신인 헤르메스와 메디치 가문을 오버랩시킨 것이다. 당대 메디치 가문 역시도 은행업과 상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지 않았던가? 봄의 정원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헤르메스를 그림으로써 메디치 가문의 역할이 바로 새로운 문화와 경제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임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로고는 헤르메스의 모자를 인용한 디자인
여기까지는 헤르메스의 고전적 버전이라고 한다면, 현대에 오면 헤르메스는 좀 다른 버전의 신이 된다. 바로 오늘날 하이테크놀로지 문화 즉 인터넷문화와 관련된 가장 적합한 신이 된 것이다. 네이버의 로고가 무엇인가? 바로 헤르메스가 쓰던 날개 달린 모자가 아닌가?! 주지하듯 헤르메스의 상징물은 날개 달린 모자와 날 개달린 샌들, 그리고 지팡이다. 헤르메스는 거의 반바지 차림으로 언제나 재빠르고 경쾌하게 날아다닌다. 어찌하여 헤르메스는 인터넷 검색 순위 최고를 달리는 사이트의 상징이 됐는가?

헤르메스는 바람과 속도의 신이며, 월경(越境)의 신인 것이다. 헤르메스는 바람처럼 날아다니면서 장애물을 피해다니며, 사람들 눈에도 잘 띄지 않게 행동한다. 이런 바람과 속도의 신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정보의 신이다. 바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는 요즘 젊은이들이야말로 헤르메스의 진정한 후예들이다. 그들은 인터넷 세계에 접속해있지 않으면, 엄청난 폐쇄공포증을 느낀다. 지난해 한전의 정전으로 인해 검증된 사실이다. 그들에게 탁 트인 소통의 광장은 인터넷이고, 그런 인터넷에 닿아있지 않으면 마치 밀실에 갇힌 것처럼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가장 섬김을 받는 신이야말로 헤르메스에 다름 아니다. 이제 정보를 찾아 하릴없이 인터넷을 누비는 모든 누리꾼은 모두 헤르메스의 적자가 됐다.

정보의 속성이 그런 것처럼 헤르메스 후예들은 속도경쟁에 민감하다. 이제 그들은 예전사람들이 중요시했던 노하우(know-how)보다는 노웨어(know-where)를 더 중시한다. 그러니까 어떤 기발한 비법을 개발하기 보다는 어떤 비법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이제 발 빠르게 정보를 선점하는 자가 성공하게 되는 세상이다. 이 시대의 헤르메스들은 IT계통의 모든 선구자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 등일 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꾀바르고 재치있게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이 득세하는 세상이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대중을 매혹하는 그들의 속도는 바람의 속도이며, 그 바람의 속도는 요즘 사람들의 감각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야말로 바람, 바람, 바람이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앤디 워홀(왼쪽부터)
그렇다면, 이들 IT계통의 모든 사업가들은 일종의 개념미술가들이 아닌가. 개념미술이란 무엇인가? 바로 아이디어와 생각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걸 말한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이단아 뒤샹은 생각을 예술로 만든 최초의 사람이다. 남성용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미술관으로 들여온 사건, 이 사건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그저 아이디어와 생각만으로도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첫 번째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개념미술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디어를 개진해, 그것도 물질을 최소화시킨 디지털의 세계를 만들어내 대중(관객)에게 문명의 이기를 참신하고 재미있게 즐기도록 한 이들 IT 사업가들이야말로 뒤샹 이후의 가장 참신한 개념미술가가 아닌가 말이다.

갑자기 이들을 떠올리면서,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비지니스가 최고의 예술” 혹은 “사업을 잘하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했던 워홀의 말은 또 얼마나 현대적이며 또 얼마나 헤르메스적인가? CEO를 위한 강좌를 할 때마다, 나는 CEO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개념미술가라고! 아이디어를 개진해, 제품(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을 만들고, 마케팅과 홍보를 하는 등의 모든 기획이야말로 진정한 개념미술이 아니겠느냐고! 게다가 돈을 벌어 직원들을 먹여 살리기까지 하는 건 너무 멋진 일이 아니냐고 잔뜩 치켜세운다. 그러면 그들은 또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예술 아닌 게 무엇이냐고, 모두가 예술가가 아니겠냐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두가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예술적으로 삶을 산다면, 그래서 삶과 예술의 경계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진정 예술이 원하는 세계가 아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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