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부동산시장의 회색분자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
  • 등록 2023-12-27 오전 6:15:00

    수정 2023-12-27 오전 6:15:00

“우리 삶의 현실 속에는 흑과 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밝은 톤의 회색이거나 어두운 톤의 회색이 있을 뿐이다.”

원로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한국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것은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을 뒷받침하는 흑백논리”라고 잘라 말한다. 흑과 백 사이에는 수많은 색이 존재할 것이다. 흑백만 옳다면 나머지 색들은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 흑백논리는 결국 ‘상대방은 그르고 나는 옳다’는 극단적인 편 가르기로 이어지기 쉽다. 그는 “완전한 흑과 백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랜 삶의 철학이 우러나온 김 교수의 글을 읽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구루(스승)의 말씀처럼 들렸다. 김 교수처럼 회색에 가치를 부여한 사람으로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꼽힌다. 그는 “도덕을 제외한 모든 인간의 문제는 회색 영역에 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회색은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다. 소속이나 주의, 노선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을 뜻하는 회색분자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실천력이 부족하거나 비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하다는 표현이 자주 회자된다.

회색분자라는 왜곡된 의미가 아닌, 회색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보자. 회색은 사상적으로 극단적인 진보나 보수(흑백)가 아닌 중간영역의 가치를 상징할 것이다. 말하자면 중도주의다. 중도주의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에 가치를 부여한다. 수용 가능한 사상적 스펙트럼도 넓다. 보수 색깔을 띠든, 진보 색깔을 띠든 사고와 행동이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 있다면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포용적 중도주의’다. 이념적 잣대에 집착하면 유연성이 떨어지므로 특정 이념보다 유용성 입장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충실히 따른다. 절대 가치를 추종하는 게 아니라 개별 사안에 따라 탄력적으로 사고한다. 내 견해와 다르더라도 그의 생각에 귀를 기울인다. 이 같은 포용적 중도주의는 시쳇말로 싫더라도 존중한다는 의미의 ‘실존주의’다.

이런 자세는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의 ‘이타적 개인주의’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오만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으면 소통과 타협이 어렵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언더도그마(under dogma)에 빠지는 것은 곤란하다. 언더도그마는 힘이 약한 자는 힘이 강한 자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선하다는 신념이다. 반대로 오버도그마(over dogma)의 경우 강한 자는 선하고 약한 자는 악하다고 본다. 이런 양극단의 도그마에 빠지면 진실이 왜곡된다. 사람은 착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다. 많은 경우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그를 악하게도, 선하게도 만든다. 흔히 말하는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어떻게 하면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까. 그 방법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는다’는 의미의 중용을 추구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올로기 전쟁터로 변한 요즘 부동산시장에서는 정치적, 극단적인 논리만 횡행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자극적이고 편향에 가득찬 사람이 자주 보인다. 물론 누구나 지향하는 가치는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를 수 있고 개성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이라는 게 있다. 상식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통 인식이다. 주장을 펴더라도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특정 정치색을 띠는 순간 전문가의 균형추는 무너진다. 기계적인 균형이라도 좋다.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생각하고 생각의 중심 추를 중앙에 놔보자. 나의 이익이 혹시 타자, 나아가 공동체의 이익을 저해하지는 않는지, 한 쪽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보자. 한 쪽 방향만 반복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멀리하는 게 좋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게 균형(balance)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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