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의 억지 공세에 또 굽실댈까 걱정이다

  • 등록 2020-06-11 오전 5:00:00

    수정 2020-06-11 오전 5:00:00

북한의 이번 대남 공세는 생뚱맞고 갑작스럽다는 점에서 배경과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어제도 남한 규탄 군중집회를 소개하며 ‘분노의 불길’ 등의 자극적 문구로 대남 압박을 계속했다.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비난 성명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세를 펼치는 중이다.

육두문자에 가까운 김 부부장의 성명이 발표되자 통일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단금지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청와대도 “대북전단 살포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라고 맞장구쳤다. 여권에선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주권국가의 자존심을 팽개치고 평양의 하명에 따르려는 굴종”이란 비난이 쏟아질 만했다.

그러나 북한은 공세 수위를 더욱 높이며 ‘친미사대’까지 지적하고 나섰다. 그제는 김 부부장과 강경파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지시로 “대남 사업을 철저히 대적(對敵) 사업으로 전환한다”면서 ‘죗값 계산’이라는 명분으로 청와대와 노동당 사이의 핫라인 등 남북 통신선 4개를 모두 끊어 버렸다. 남북관계가 평창동계올림픽 이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전단 살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정부가 문제해결 의지를 밝혔는데도 엉뚱하게 한·미 관계까지 트집 잡는 것은 전단 문제를 넘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얘기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최근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북한의 식량 부족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굶는 사람이 늘어나고 군대조차 식량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평양시민의 생활보장’을 이례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민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건 북한의 상투수법이다. 이번에도 억지를 한껏 부리고 선심 쓰듯 식량을 받아낼 속셈일 게다. ‘대적 사업’이 단계적 조치라고 선언된 만큼 군사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단호한 대처 태세를 갖춰야 한다. 설혹 식량을 전달하더라도 굽실대며 줄 게 아니라 서독의 동독 지원에서처럼 작은 약속이라도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남북관계도 발전할 수 있다. 이런 판국에 국회가 판문점 선언을 비준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상황을 더욱 어긋나게 몰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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