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홍 강릉원주대 멀티미디어학과 교수가 지난달 2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6년간 재임했던 카카오(035720) 사외이사직을 떠나며 남긴 글이다. 최 교수는 카카오가 다음과 합병하기 전부터 사외이사를 맡아 카카오 성장을 지켜본 산증인이지만 이른바 ‘6년 제한 룰’에 걸려 사외이사에서 퇴임할 수밖에 없었다.
도입 22년을 맞은 사외이사 제도가 변곡점에 섰다. 한 기업에 6년 이상 사외이사로 재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과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사를 대상으로 이사회 등기임원 가운데 최소 1명 이상을 여성을 두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올해부터 적용된다.
기업 경영을 감시·견제하려 임명됐지만 기업 입맛대로 찬성표를 던지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비판을 듣던 사외이사가 이들 법 개정으로 독립성·다양성을 확보하리란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반면 우리나라 인력 풀이 제한적인 데다 기업에 선택의 폭을 좁혀 지속가능하지 않은 제도라는 비판도 동시에 제기된다.
‘6년 제한’ 때문에…바뀌는 사외이사
이데일리가 15일 대기업집단 상위 9개 그룹(농협을 제외한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한화·GS·현대중공업)의 매출액 상위 3개사씩 총 27개 상장사를 분석한 결과, 삼성물산·삼성SDI·SK텔레콤·SK하이닉스·LG유플러스·한화솔루션·GS리테일 등 7개사가 이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6년 안팎을 재임한 사외이사 대신 신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할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028260) 역시 사외이사직을 자진 사임한 빈자리 하나를 제외하면 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명예교수와 권재철 수원대 고용서비스대학원 석좌교수가 6년 임기를 다하고 사임하고 정병석 한양대 경제학부 특임·석좌교수,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신규 선임된다.
6년 제한 룰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신규 사외이사를 선임한 사례는 현대모비스(012330), 롯데케미칼(011170),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 한화(000880), 한화솔루션(009830), 현대미포조선(010620) 정도였다. 이번에 임기 만료되는 사외이사가 없는 삼성전자(005930)와 GS건설(006360)을 제외하면 ‘6년 제한 룰’에 걸리지 않는 기업 18개사는 사외이사 재선임을 택했다.
女 등기임원 의무화가 ‘유리천장’ 깼다
27개사의 여성 사외이사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6명에 그쳤지만 이달 주주총회를 거쳐 12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여성 등기임원을 최소 1명 이상 선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너 3세인 김동관 부사장이 등기임원으로 선임되는 등 이사회 기능 강화를 꾀하는 한화솔루션(009830)은 에너지분야에서 차세대 여성 리더로 꼽히는 어맨다 부시(Amanda Bush) 세인트 오거스틴 캐피탈 파트너스 파트너를 사외이사 후보로 올렸다. 여성 사외이사가 나오기는 한화그룹 가운데서도 처음일 정도로 이례적이다. 그는 미국의 41대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의 아들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삼성물산은 제니스 리 전 SC제일은행·금융지주 경영지원총괄 부행장을, 삼성SDI는 김덕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장을 각각 여성 사외이사 후보자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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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이사회 내 여성 비중이 높아지고 종전에 6년 이상 재임하던 사외이사가 물갈이되는 등 이사회 구성이 다양해졌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외이사 독립성 문제를 사외이사 추천 위원회를 비롯해 자발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제도로 접근하는 덴 무리가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전문성을 보유한 사외이사 인력 풀이 전직 고위 공직자, 교수, 최고경영자(CEO) 등으로 넓지 않은 데다 재임 기간을 제한해 기업 선택의 폭을 좁혔다”고 말했다.
반면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사외이사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려면 전문성과 독립성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사외이사는 둘 모두 약하다”며 “사외이사 40%를 관료 출신이 차지하는 등 독립성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상법·자본시장법의 개정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