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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탈북민 김모(42)씨는 정상회담이 어떻게 될 거냐 묻는 말에 짧게 말했다. “정상회담이 열리든 말든 관심없다”며 퉁명스럽게 답한 김씨였지만 주민들이 정상회담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자 이내 귀를 기울였다. 같은 시각 식당에서 만난 또 다른 탈북민 이모(41)씨는 “내색은 안 해도 탈북민들 사이에서는 정상회담의 성공개최 여부가 화두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이날 인천 남동구 주공아파트에서 만난 탈북민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기대와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짓다가도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내 최대 탈북민 밀집지역…기대와 우려 교차
인천 남동구 논현동은 지난 2003년 탈북민 38명 입주를 시작으로 꾸준히 탈북민 정착이 이뤄진 지역이다. 인천 하나센터에 따르면 이 지역에 거주 중인 탈북민은 2725명(지난해 11월 기준)이나 된다.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탈북민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하나센터 관계자는 “인천 남동공단이 인근에 있어 일자리를 구하기가 쉬운데다 통일부 산하 남북 하나원이 정착 지원을 위해 임대아파트를 배정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탈북민들이 많이 모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남으로 건너온 지 올해로 10년째라는 신모(76)씨는 “북한이 언제든 또 다시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불안하긴 하다”면서도 “예년과 달리 이번에 갖는 정상회담은 분위기가 다름을 느낀다”고 했다.
신씨는 “북한에서도 이미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심하다”며 “북 체제의 불합리함을 깨닫고 각자 자기 살길을 찾는 경우가 많아 북에서도 이 소식을 두고 이야기를 많이 할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신씨의 남편인 최모(71)씨는 “정상회담과는 별개로 통일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최씨는 “통일을 위해 김정은이 지금의 자리를 내려놓을지 여전히 의심스럽다”며 “김정은이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번 정상회담도 실질적인 소득을 얻기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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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은 기대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가족과 친구들 이야기가 나오자 정상회담의 성공에 대한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윤씨는 “나 같은 가족들에겐 이번 회담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며 “정상회담이 잘 되더라도 차후에 중국과 미국 등이 평화 정착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강도 혜산에서 탈북한 장모(58)씨는 “정상회담 후 고향을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며 “북한에 남아 있는 동생을 위해서라도 남과 북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배 속에 딸아이를 품은 채 남으로 건너왔다는 김모(42)씨는 “말은 안해도 정상회담이 열리고 김정은이 남한으로 온다는 사실에 탈북민들은 마음이 덜컹 내려 앉는다”며 “모처럼 조성된 남북 평화 국면에서 정치인들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