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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자본확충 문제로 다시 촉발된 금산분리 문제부터 시작했다. 그는 “금산분리의 적용은 업종이 아니라 업무 내용과 규모에 따라 차별화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일반은행을 동일 잣대에 놓고 금산분리의 규제를 적용하는 게 무리라는 얘기다. 그는 “산업계 자금이 대주주인 증권사도 은행 고유업무인 예대사업을 하는데 은행에 한해서만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할 말 하는 소신파…“겸업주의로 가야”
이 같은 맥락에서 증권 뿐 아니라 은행도 전업주의가 아닌 겸업주의로 가야 한다는 지론을 다시 한번 폈다. 종합운동장을 만들어 다 같이 경쟁할 수 있는 구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초대형 투자은행(IB) 탄생에 대한 경계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하 회장은 “세계 어느 나라도 증권업 플랫폼을 기반으로 겸업주의를 허용한 곳은 없다”며 “대형 증권사가 단기로 기업어음을 발행해 모험자본에 투자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일하다”고 지적했다. 증권사가 결국은 고객 대출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하 회장은 은행에 대한 삐딱한 시선에 대해서도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는 “차라리 관만 개입했으면 좋겠다”며 “정치권과 언론이 과도하게 은행을 몰아붙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81년 씨티은행에 입행하면서 뱅커로서의 길을 걸었다. 심사역, 딜러 등을 거쳐 자금담당 이사, 투자은행사업부문장을 역임한 후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2001년 한미은행장에 올랐다. 당시 48세 최연소 은행장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다섯 번에 걸쳐 연임하면서 은행권 최장수 행장이란 기록도 남겼다. 수장 임기가 2~3년으로 짧은 국내 금융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2014년 은행연합회장에 취임하면서 은행권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긴 족적만큼이나 은행업에 대한 생각도, 고민도 깊다.
은행업만 37년 한 우물…고민도 깊고 열정도 컸다
또 주택 임대주체를 개인에서 기관이나 정부로 바꾸는 것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 회장은 “우리나라는 개인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전세나 월세를 주는 식인데 해외에서는 정부나 기관이 임대 주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결국 가계부채를 기관부채, 정부부채로 이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 회장은 마지막까지 바쁜 일정을 보냈다. 임기 만료 하루 전인 29일에는 오전에 사원총회를 통해 차기 회장으로 김태영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선출했고 바로 이어 금융노조와의 산별교섭을 가졌다. 혹시 회장 인선이 길어질 경우 임단협을 마무리 지어야 할 수도 있어 퇴임 후 여행계획도 아직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노조와의 임단협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하 회장의 퇴임 하루를 앞두고 금융권 노사는 2017년 임금인상률을 2.65%로 합의했다.
임기 후 계획을 묻자 하 회장은 “아내에게 돌아가겠다”며 활짝 웃었다. 늘 시간을 쪼개며 바쁘게 살아온 만큼 당분간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다음 달 초에는 현재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해외 기업의 이사회 참석차 부부동반으로 두바이를 잠시 다녀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