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8시 전에 사무실로 출근한다. 올해 인사때 복지정책과로 이동해 저소득층 후원 업무를 하고 있다. 복지업무가 늘어난 탓에 인력을 확충하면서 입사 5개월만에 부서를 옮겼다.
B교회에서 ‘1000만원을 10명에게 지급해달라’고 불우이웃 돕기성금을 보내왔다. 각 동 주민센터에서 추천한 명단에서 지원대상을 선정했다. 성금 배분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어려운 형편의 지원대상자들이 성금을 바로 받지 못하면 당장 가야 할 병원에 가지 못할 수도 있고 생계가 곤란해 질 수도 있다. 또 성금 배분이 늦어지면 지원 대상자들이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얼마전에도 “주민센터에서는 입금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거냐”는 항의를 받았다.
민원인의 전화를 받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확인해보니 이미 일괄 지급했다고 한다. 민간에서 오는 후원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거친다. 주민들은 동 주민센터에 지원 신청을 하고 동 주민센터에서 선별한 지원 대상자를 내가 최종 확인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는 식이다. 돈 관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하지만 민원은 나나 동주민센터가 받는다.
사무실 문을 열고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한 손에 통장을 들고 다짜고짜 역성을 내신다. “준다고 한 돈 안 들어왔어. 입금한다고 한 게 언젠데.”
할머니가 내미는 통장을 살펴보니 통장정리가 지난달부터 안 돼 있다. “할머니 통장정리 안 하셨네요. 은행 가셔서 통장정리 해달라고 하시면 입금된 것 확인하실 수 있으세요.”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공무원이 된 이후 밥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우리 과 사람들은 20분이면 점심식사를 끝낸다. 언제 민원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번을 정해 점심시간 업무를 맡길 수도 없다. 각자 맡은 업무가 달라 대신 업무를 처리해 줄 수 없을 뿐더러 대신 처리해 줄 시간도 없다. 서둘러 밥을 먹고 자리로 돌아왔다. 옆의 선배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한 숨을 돌리고 휴대폰을 보니 동창들 단체 카카오톡 방에 저녁에 만나자며 시간을 조율하는 메시지가 수십건이다.
‘오늘 8시 30분에나 끝날 것 같은데…’ 내 메시지에 친구들은 “공무원은 칼퇴근 아니냐?” “세금으로 월급 받으려면 그 정도는 일해야지” 라며 놀려대기 바쁘다.
그 때 “내가 아픈데 왜 돈을 더 안 주는 거냐?”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고함이 들렸다. 사무실에 40대 민원인이 등장했다. 몸이 불편해 일을 하지 못하는 이 기초생활수급자는 다리가 불편해 병원에 오고 갈 때 택시를 탄다고 했다. “다리가 불편해서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데 돈이 모자란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이 더 없나?”
한 기업에서 쪽방촌 주민을 위해 써달라면서 300만원을 기탁해왔다.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구청장님과 후원자가 참석 가능한 전달식 날짜를 조율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후원자들에게 발송하는 감사서신 디자인이 나왔으니 확인하라는 디자인 회사의 전화였다.
가방을 꾸려 디자인회사로 향했다. 새로 의뢰한 감사서신 디자인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 팀장에게 보냈다.
“디자인 이렇게 나왔는데 괜찮은 것 같습니다” 통화기 너머 팀장님이 “수고했어요. 내일 직접 봐야겠지만 사진상으로는 괜찮네. 어서 들어가세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8시가 넘었다.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에 가면 9시도 넘을 것 같다. “미안한데 다음 모임 때 갈게” 메시지를 남기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났다.
<이 기사는 취재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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