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기업의 위기예방과 신용평가

  • 등록 2015-12-18 오전 6:01:01

    수정 2015-12-18 오전 6:01:01

[윤인섭 한국기업평가 대표이사] ‘Honesty is the best policy’(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서양의 격언이지만 실생활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영리에 덜 치우치는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윤리나 도덕의 실천은 어려운데 하물며 이윤추구가 주된 목적인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사건이 그랬고 일부 문제기업들에서 나타난 분식회계 사건들이 그랬다. 좋은 점은 부각시키고 나쁜 점은 감추려는 인간의 기본 속성이 변하지 않는 한 이 같은 행위가 완벽하게 근절되기는 어렵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할 수 도 있다.

필자가 다년간 CEO로서 근무한 글로벌 기업들에는 조금 다른 기업문화가 있다. ‘Bad news first’가 바로 그것인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을 때 나쁜 소식부터 먼저 알리라는 것이다. 안 좋은 소식을 듣고도 기뻐할 사람은 없겠지만 당장 듣기 좋은 이야기보다는 나쁜 소식을 먼저 접하게 되면 나중에 가서 갑자기 놀랄 일도 없어지고(No surprise!) 이는 오히려 상호 간의 신뢰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정보공개와 의사소통 등 ‘나쁜 소식’이 최고경영층에 신속하게 보고될 수 있는 조직문화가 이뤄져야 한다. 물론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제때에 제대로 공개했을 때 당장 감수해야 할 불이익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존폐를 위협하는 극단적 상황까지 내몰릴 가능성은 낮아지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신뢰형성을 통한 이득을 누릴 수도 있다.

위기를 예방하려면 내부통제시스템이 일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점검하는 일도 중요한데 이를 위해 신용평가를 이용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즉 평상시 자신 회사의 신용위험을 관리하고 건전한 재무정책을 유도하는 ‘자기규율’(Self-discipline)적인 장치로 신용평가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자사의 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야 하는 부담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신용평가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금조달 창구인 자본시장과 지속 가능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회사 이익과도 부합한다.

물론 신용평가가 발행자, 투자자 등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려면 먼저 그에 합당한 신용평가사의 자체 노력과 역량이 전제돼야 한다. 신용평가사는 평가기준과 평가방법론의 투명한 공개와 일관된 적용을 통해 시장에 신뢰를 줘야 한다. 또한 신용등급이 갖는 예측 정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위험요소 및 위험관리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위험을 먼저 파악해 이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우리 보다 훨씬 앞서 신용평가를 도입한 서구 선진국에서는 기업이 무조건 높은 신용등급을 바라기보다는 자사의 최적 조달조건에 맞는 재무 레버리지 수준과 신용등급 수준을 결정하는 재무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들은 평가사와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평가사로부터 자사의 신용위험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일방적으로 등급상향을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사의 신용위험을 사전에 관리하고 최적의 재무정책을 수립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신용평가사를 파트너이자 신용위험 관리를 위한 정보 채널로 활용하는 기업문화를 구축할 때 우리 자본시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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