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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술을 퍼마셔 입안에 혀가 12개가 되는 것 같다. 한심해. 이런 얼간이 같으니.” 텁수룩한 머리. 셔츠 단추마저 잘못 끼운 모습이 너저분하다. 배우 박정자(71)는 텁텁한 목소리로 70대 남자배우를 연기한다. 깜깜한 무대 뒤에서 자신의 연극 인생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는 모습이 애달프다. “일흔이면 교회 다니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데 난 이렇게 욕지거리니….” 박정자는 비애와 광기를 오가며 단막극 ‘백조의 노래’를 이끈다. 50년을 무대에서 산 노배우의 현실이 역할에 포개진다. 묻혀 있던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막극이 노배우의 관록을 입고 부활했다.
‘14인 체홉’은 체호프가 남긴 단막극 중 다섯 작품을 모은 옴니버스 식 공연이다. 박정자·박상종(‘백조의 노래’), 김태훈·구도균(‘담배의 해로움에 대해’), 최용민·유준원·전미도·이은·이창훈(‘청혼’), 서정연·정수영·김태근(‘곰’), 박호산·우현주(‘불행’)등 14명의 배우가 저마다의 개성으로 색을 입혔다. 제목이 ‘14인 체홉’인 이유다.
감각적인 무대가 인상 깊다. 분장실을 무대 위에 노출해 배우가 작품 캐릭터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준 게 신선하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짜릿하다. 잘 보이지 않는 곳도 ‘살아 있다’. 무대에 장막처럼 처진 실커튼 뒤에는 여행가방과 책상, 의자들이 엉켜 있다. 세월이 쌓인 듯 겹쳐 있다. 이를 배경으로 배우들이 번갈아 무대를 오가며 삶을 얘기한다. 오경택 연출은 “삶은 여행과 같다”며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주인은 아닌 사람들의 모습을 세트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14인 체홉’은 7일까지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공연한다. 장소를 옮겨 8월17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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