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긴축이라니, 韓 개도국 마인드 벗어라"[이정훈의 人터뷰]

`S&P 집행부사장 역임` 폴 시어드 하버드대 연구원 ②
"美자산 버블 아냐…암호화폐 틈새 가치저장수단 가능"
"미·중 이대로 가면 `투키디데스의 함정` 빠질 위험 커"
"韓 샌드위치 아닌 가교 역할해야…日과 관계개선 필요"
"개도국 마인드 벗어나야…선제적 통화·재정 긴축 안돼"
  • 등록 2021-08-18 오전 7:11:00

    수정 2021-08-18 오전 7:11:00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인플레이션 우려감과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창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뉴욕증시는 마치 하락을 잊은 것처럼 연일 역사상 최고치를 새로 써내고 있다.

이런 뉴욕증시를 보면서 흔히 `투자의 구루(Guru)`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은 `곧 뉴욕증시의 붕괴가 올 수 있다`며 한 마디 씩 경고하고 있지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아예 그런 경고를 듣지 않으려 귀를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폴 시어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전임연구원 (사진=시어드 연구원 제공)


그래서 보수적이라고 하는 국제 신용평가사에서 잔뼈가 굵은 폴 시어드(Paul Sheard)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전임연구원에게 `자산 버블`이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곧바로 수긍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지금 상황은 우리가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는 그런 류의 버블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법정화폐를 대체하거나 주류 투자자산이 되진 못하겠지만 “중앙은행에 혁신을 압박하는 존재”이면서 “틈새시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치저장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주식이나 부동산, 고위험자산의 버블 우려가 있다.

“버블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자산가격이 펀더멘털로부터 크게 괴리된 상태인데도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강할 때 버블이 생기는 법이다. 지금 주식이나 위험자산시장은 그런 의미의 버블 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밸류에이션이 높긴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버블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의 자산가격은 통화부양정책으로부터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고, 미래의 현금흐름을 할인함으로써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지향하는 향후 경제의 궤적을 선반영하고 있다. 단순한 자산가격 버블과, 통화 및 재정정책에 대응해서 상승하는 자산가격을 구분해야 한다.”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가 거세다. 암호화폐는 단순 투기일 뿐인가.

“비트코인과 여타 암호화폐는 상당한 기술과 지급결제 시스템, 통화체계의 진전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기저 기술인 블록체인은 단순한 암호화폐 어플리케이션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그런 암호화폐는 각국 중앙은행과 민간 결제서비스업체들에게 혁신을 압박하고 있고, 그 덕에 중앙은행들은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다만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에 도전하거나 그를 대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국이 규제하지 않는 영역에서만 암호화폐는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트코인은 구매력을 이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저장 수단이 될 수 있지만, 투기적 거래가 많은 만큼 고급 와인이나 예술작품, 금(金)과 같이 틈새시장에서의 역할에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본다.”

중국과 한국에 대한 얘기도 궁금해졌다. 호주 출신인 시어드 연구원은 일본 오사카대 교수와 일본은행(BOJ) 방문연구원, 베어링자산운용 일본주식 투자 대표를 역임한 덕에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은 석학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시어드 연구원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돼선 안되며 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경제규모 면에서 한국은 이미 선진국임을 자부해도 괜찮을 만큼 성장했으니 개발도상국 마인드를 버리라고도 강조했다.

조 바이든 정부에서도 미·중국 간 갈등이 오히려 더 고조되고 있다.

“지난 40년 간 중국 경제가 빠르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또한 단순히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외교분야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균형을 뒤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 상대방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지금은 그 과정에 있다고 본다. 물론 그 방법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고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 유일한 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고, 중국도 글로벌 파워에 걸맞는 글로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정치 체제를 고집한다면, 새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해 갈등과 전쟁을 만든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이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려면.

“두 강대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돼선 안되며, 한국은 두 나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해야 한다. 지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한국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를 인정하고 미국과 중국 간 관계를 형성하고 중재하는 걸 지원하는 건설적인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또 북한과의 화해를 위해서도 노력하는 동시에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를 바탕으로 상당한 외교적 역량을 쌓아야 한다.”

현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한국의 통화·재정정책은 어때야 하나.

“글로벌 경제는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극심한 경제적 충격의 그늘 아래에 있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모두를 적극 동원해 완전고용으로의 복귀를 지원하는 동시에 총 수요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은 명목 GDP 기준으로 세계 10위,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14위의 경제대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상당한 상승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이제는 선진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직은 선제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챙길 시점은 아니란 뜻인가.

“팬데믹 이후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국가부채 수준이 크게 치솟은 건 비단 한국만이 아닌 거의 세계 주요 국가들에 나타난 공통점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올 2분기 실질 GDP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에 비해 1.3% 정도 웃도는 수준이다. 만약 팬데믹이 없었다고 가정했을 때의 전망치에 비해서는 3%나 낮은 것이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전년동월대비 2.6%로, 한국은행 목표치를 웃돌지만, 이는 작년 팬데믹 쇼크에 따른 기저효과일 뿐이다. 실제 2년 전 같은 달에 비해서는 1.7% 상승에 그친다.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지, 그 반대가 돼선 안된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처럼 한국도 선제적으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타이트하게 조이기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보다 강력하고도 완전한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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