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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경제의 ‘성장 고점론’이 조금씩 번지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강한 델타 변이의 확산 탓에 고용 증가세가 예상만큼 가파르지 않고 기업들의 성장 기대가 둔화하고 있다는 지표들이 쏟아져서다. 일각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물가 급등 속 경기 불황)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전월 대비 반토막 난 7월 민간고용
4일(현지시간) ADP 전미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7월) 민간부문 고용은 33만명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65만3000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달(68만명) 대비 반토막이 났다. 지난 2월(18만명) 이후 가장 작은 월 증가 규모이기도 하다.
레저·접대업(13만9000명), 교육·보건업(6만4000명) 등은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이 늘었으나, 제조업의 경우 일자리가 한달새 8000개 증가하는데 그쳤다.
넬라 리처드슨 ADP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고용시장이 고르지 못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며 “2분기 들어 일자리 증가 속도가 현저하게 둔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팬데믹 완화와 함께 고용시장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에 한참 못 미치는 흐름이다. 이에 따라 오는 5일과 6일 연달아 나오는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 고용보고서(비농업 신규 고용) 등의 지표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아졌다.
특히 최근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40만건을 넘고 있다. 팬데믹 이전 주간 실직자는 20만명 남짓이었는데,현재 그보다 두 배 정도 많은 것이다.
일자리는 연방준비제도(Fed)가 평가한 미국 경제의 ‘실질적인 추가 진전(substantial further progress)’의 척도다.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초기 신호를 보낸 연준 입장에서는 고민이 커질 수 있는 대목이다.
오름세 점차 꺾이는 기업 경제심리
기업들의 성장 기대 역시 주춤해졌다. 정보제공업체 IHS 마킷에 따르면 지난달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 확정치는 59.9(계절조정 기준)로 나왔다. 전월(64.6) 대비 하락했다. 서비스업 PMI는 5월 당시 70.4까지 오르며 2009년 10월 집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그 이후 두 달째 오름세가 꺾였다.
PMI는 매달 제조업, 서비스업 동향에 대한 설문을 바탕으로 산출하는 경기지표다. 기준은 지수 50이다. 이를 하회할 경우 전달에 비해 경기 수축을, 상회할 경우 경기 확장을 각각 기업 구매 담당자들이 예상한다는 의미다.
크리스 윌리엄스 IHS 마킷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성장 기대감이 지난달 크게 완화했다”며 “경기 확장세는 추후 몇 달간 더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활동의 주요 척도 중 하나인 원유 수요가 꺾이는 모습까지 나왔다. 이날 나온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집계를 보면, 지난 30일로 끝난 한 주간 원유재고는 362만7000배럴 증가한 4억3922만5000배럴로 나타났다. 시장 예상치(270만배럴 감소)와 달리 늘어난 것이다. 재고가 증가했다는 것은 원유 소비가 그만큼 작다는 뜻이다.
주식·원유 등 위험자산 줄줄이 약세
상황이 이렇자 미국 내에서는 물가가 폭등하는 와중에 경기가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정책 처방이 어렵다는 점에서 악성 중 악성으로 꼽힌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1.127%까지 하락했다. 예상을 깨고 1.1%대에서 1% 안팎 레벨까지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날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 중심의 다우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92% 하락한 3만4792.67에 거래를 마쳤다. 3만5000선이 깨졌다. 대형주를 모아놓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S&P 지수는 0.46% 내린 4402.66에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거래일 대비 배럴당 3.4% 내린 68.1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20일 이후 처음 배럴당 70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인베스코의 세바스찬 맥케이 펀드매니저는 “성장세가 여전히 강한 단계에 있지만 회복 초기만큼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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