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목숨도 중요하다”
중국 IT업계의 노동 상황을 이름에 그대로 반영한 ‘996.ICU’ 운동이 큰 화제다. 중국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운동이라고 불리는 996.ICU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고, 주 ‘6’일 동안 일하다 ‘중환자실(ICU)’에 실려 간다”는 개발자들의 말에서 비롯됐다.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던 IT업계 종사자들의 저항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중국인들의 공감을 한 몸에 받으며 전국으로 퍼졌다. 여론 통제가 강하다고 불리는 중국에서 996.ICU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초과근무 만연한 IT업계…개발자 불만 키워
중국 관계법령에 따르면 중국의 표준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 매주 평균 44시간 이하다. 또 기업은 근로자에게 매주 최소 1일의 휴일을 제공해야 한다. 이 제도는 중국 노동시간에 관한 규정 제3조와 노동법 제36조에 명시되어 있다. 중국의 원칙적인 근무시간은 최근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한국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다.
그러나 IT업계의 실상은 원칙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초과근무가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현행법을 거스르는 업계 실태에 불만을 가진 개발자들은 세계적인 오픈소스 저장소 깃허브(GitHub)에서 996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개발자들은 웹사이트에서 “996을 장려하는 회사에 있으면 적어도 주 6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 노동법을 나열하며 “996 업무 일정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본급의 약 2.2배를 받아야 한다”면서 “하지만 대부분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사이트 끝에는 2012년 미국 흑인 운동의 표어를 딴 “Developers' lives matter(개발자의 목숨도 중요하다)”를 외쳤다.
운동이 점점 확산되자 텐센트, 샤오미 등 중국 유명 기업들은 정보 자체를 아예 가로막기 시작했다. 중국의 웹 브라우저를 통해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면 ‘잘못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접속이 차단된다.
996을 하는 것은 행운?…마윈 왜 이러나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업가인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996 제도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는 지난 11일 열린 알리바바 행사에서 “996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기업, 개인이 많다”고 주장하며 “996을 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이어 “편안하게 8시간 일하려는 직원은 필요 없다”며 “996을 해보지 않은 인생은 자랑스럽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마윈은 사업가로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996 문화가 오늘날 알리바바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마윈의 발언에 중국 네티즌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네티즌들은 “결국 마윈도 자본가였다”며 마윈을 비판했다. 논란이 퍼지자 마윈은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며 어중간한 태도로 돌변했다. 마윈은 “996을 강요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며 앞서 언급한 발언과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이어 “996은 건강에 좋지 않고 법적으로 허용되지도 않는다”며 한발 물러섰다. 마윈은 근로자들의 열정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한국도 넘어야 할 산 많아
IT업계의 근무환경 문제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IT업계 종사자 근무환경 실태’에 따르면 주 40시간 이하로 근무하는 근로자는 10명 중 1명꼴이었다.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을 일한다는 근로자는 12.4%였고 25.3%가 주 52시간 이상을 근무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계도기간과 함께 시행되자, 여러 IT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근로 문화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유명 기업들이 탄력근로제를 적극 도입하면서 초과근무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무량이 몰리는 연말을 거치면서 점점 균열이 생겼다. 오히려 도입 이전의 초과근무 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업도 있었다.
지난 3월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가 조사한 ‘유연근무제 활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IT기업 67.2%가 “현행 근로기준법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했다.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는 기업은 6.3%에 그쳤다. 현행법 시행착오와 워라밸 현상이 함께 나타나면서, 한국 IT업계도 여전히 '근로 문화 개선 문제'라는 난관에 빠져있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