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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전 이화여대 총장)는 인터뷰 내내 성취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6월30일 전통 사찰인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한 데 산파 역할을 한 기쁨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2011년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으로 산사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추진했고, 불교계·학술계·문화계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많은 분이 세계유산목록 등재를 위해 한 달에도 몇 차례 답사를 가고 여러 차례 학술대회도 하느라 고생이 많았죠. 유서 깊은 절이지만 산불 같은 자연재해나 원형을 지키지 못한 관리 부족으로 제외된 경우는 아쉬워요. 이번에 7개 사찰이 세계유산목록에 올랐으니 앞으로 권역별, 종파별로 묶어 추가 등재도 노리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사학과 출신이다. 대학 1학년 때 강화도 전등사로 답사를 간 기억을 떠올렸다. 그 전에는 할머니 따라 절을 간 적은 있지만 산사를 찬찬히 살펴본 건 처음이었다. 이후에 전국 사찰을 많이도 다녔다. 학창 시절 보은 법주사를 시외버스를 굽이굽이 타고 간 기억도 새록새록 하고, 안동 봉정사에서 발굴에 참여했다. 좋아하는 사찰이 한 둘이 아니니 50번 넘게 간 사찰도 여럿이다. 학술회의나 답사로 산사를 찾아야 할 기회가 많았다.
“역사학자로서 드라마, K팝 등 대중문화도 중요하고, 품격 있는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도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사찰과 서원에 주목했죠. 2011년 6월부터 회의를 시작해 전국 1000여 개 사찰 중에서 50개의 사찰을 뽑았어요. 영속성이 있는 사찰이 어디인가 주목했고, 지리산 권역, 계룡산 권역 등 권역별로, 화엄종 선종 등 각 종파별로 대표 사찰을 뽑았습니다.”
이 위원장은 이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쾌거가 한국 산사의 영속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했다. 애초 심사를 담당하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은 4개 산사만 등재하자고 권고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단의 적극적인 교섭으로 중국이 17개 위원국을 대표하여 7개 산사 모두를 등재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하고, 20개국의 지지발언을 얻어 만장일치로 7개 산사 모두 등재됐다.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경북 안동 봉정사, 충북 보은 법주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 전남 해남 대흥사 등 7개 산사다.
이 위원장은 2019년에는 경북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등 9개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한다. 산사와 마찬가지로 서원도 문화적 가치나 역사적 의미가 깊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고루 분포돼 있어 동서화합의 증거이기도 하다. 서원끼리 동서를 나누지 않고, 존중하고 화합했다. 서원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다면 국민대통합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세계유산 등재의 의미가 간단치 않아요. 예를 들어 여행객들이 캄보디아를 방문하면 앙코르와트 같은 인류가 함께 보전해야 할 문화유산을 방문하지 않습니까. 또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의 보석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자긍심을 갖게 되죠. 세계유산 등록으로 숙박 등 경제적으로 굉장히 활발하게 영향을 줄 수 있어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산사 외에도 서원·고택 등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계속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