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국민연금]②설문대상 전문가 만장일치…"기금운용본부 독립시켜야"

이데일리 전문가 10명 대상 설문조사
기금운용본부에 독립권 등 보장해야
해외처럼 CIO 임기 보장, 연봉 높여야
  • 등록 2017-12-29 오전 6:00:00

    수정 2017-12-29 오전 10:40:11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성선화 박정수 기자]“한국의 국민연금 전임 최고투자책임자(CIO) 중 명예롭게 퇴직한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가 뭔가요?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은 누구를 위한 건가요? 30분 미팅을 위해 하루를 허비해야 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군요.”

외국인 투자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국민연금은 허점투성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민연금이냐”고 반문한다. 정작 자신들의 쌈짓돈을 맡겨 노후를 책임지게 한 국내 반응은 무덤덤한 반면 제3자인 글로벌 투자자들이 오히려 국내 현실을 걱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64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며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공백이 지난 7월 이후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큰 문제 없이 굴러가는 듯 보이지만 중장기 계획 부재, 이어지는 운용사들의 무관심 등 CIO 부재로 인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사화 능사 아냐…“삼권분립 같은 절대 독립 필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근본적인 문제는 지배구조로 귀결된다. 이데일리가 시장 전문가 10명에게 익명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개선방안’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만장일치로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키고 CIO에게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답했다. 직속 기관인 보건복지부는 물론 정치권의 외압에서 철저히 자유롭고 기금의 운용과 결정에 대해선 그 어떤 권력도 딴죽을 걸 수 없도록 독립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독립 기관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금운용본부를 별도의 조직으로 분리해 공사화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하지만 ‘공사화가 능사는 아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설사 기금운용본부가 공사화되더라도 정치권이 외압을 넣을 방법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외형적으로는 독립을 하려면 공사화가 맞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개입한다면 차라리 보건복지부 산하가 낫다”며 “삼권분립처럼 철저히 독립돼 행사되는 구조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의 독립권은 글로벌 연기금이 갖춰야 할 4가지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대부분 선진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독립성 △전문성 △동기부여 △정보력 등 4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정보력을 제외한 나머지 3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 초 전주 이전 이후 전문성과 동기부여도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후 전체 220여명의 지원 중 23%(57명)에 달하는 인원이 이탈했으며 현재도 유능한 인재들이 국민연금을 떠나지고 있다. 운용사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이 진행한 중소형 블라인드 펀드 위탁 운용사 선정에 불과 6곳이 신청해 신청자 전원이 숏리스트(예비입찰)에 오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니 자부심이 없고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며 “그 결과 좋은 인재들이 국민연금으로 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CIO 찾으려면 정치권 독립부터 보장해야

11월 초 취임한 신임 김성주 이사장은 ‘시장 전문가’를 찾겠다고 공표했지만 오겠다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 한 올 사람이 없다는 게 투자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부의 외압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직한 CIO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가 가능한 확실한 임기 보장도 해결 과제다. 기본 임기 2년 중 첫 3개월은 업무 파악하느라 보내고 통상 후임 인선이 시작되는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는 레임덕에 시달리는 점을 감안하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년 6개월이다.

해외에서는 연기금 운용책임자의 임기를 최대한 보장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해당하는 캐나다연금의 CPPIB(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에서는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다. 기금운용본부장 임기는 기본 2년이고, 성과에 따라 1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하다. 대부분 글로벌 투자기관의 CIO 임기는 최소 5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한국도 기본 2년 임기를 마친 뒤 성과평가에 따라 1년 단위로 연임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 임기 만료 이후 한차례라도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마친 경우는 이찬우 전 본부장 1명뿐이다. 마지막으로 재취업 금지 조항을 없애고 시장과 같은 수준은 연봉 등 처우를 해줘야 한다. 국민연금의 CIO 연봉은 글로벌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유럽 등을 통틀어 한국의 정치적 외압이 유독 심각하다”며 “국민연금 CIO에게 전적인 독립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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