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①이태식 한국건설기술硏 원장 “아파트만 짓다가 골든타임 놓친다”

"우주에 건설기술 미래가 있다..더티배큠에서 우주 건설 실험 중"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아니라 삶을 바꿔야 진짜 혁명
'하이퍼 루프'로 이동시간 최소화 기술 모색 중
  • 등록 2017-05-08 오전 5:00:00

    수정 2017-05-08 오전 5:00:00

△이태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은 “우리나라 건설업계가 현재에 안주하며 아파트나 고층 건물만 짓다가는 선진국에게 새 시장을 뺏길 수 있다”며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너무 먼 이야기 같다고요? 미래는 생각보다 빨리 옵니다.”

지난달 17일 경기도 고양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만난 이태식 한국기술연구원 원장은 한국의 건설 기술 관련 질문을 던지자 난데없이 우주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달과 화성에 가는 시대를 대비해 우리 건설업체들도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가 되물었더니 이 원장은 “우리 코 앞에 있는 건설 기술 이야기”라고 말했다. 전세계가 우주 투자에 열을 올리는 만큼 한국 건설도 우주 시대에 서서히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에 안주하며 아파트와 고층 건물만 짓다 미래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 선진국에 새 시장을 아예 뺏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파트만 짓는 우리 건설, 골든타임 안에 미래로 나가야

이 원장은 “예전엔 하나의 기술이 다른 산업에 접목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린 스핀오프(Spin-off)의 시대였지만, 이제는 하나의 기술이 모든 산업을 바꾸는 스핀온(Spin-on)시대”라며 “건설은 물론 의학과 생물학에서도 각광받는 3D프린팅 기술이 사실은 우주 기술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3D프린트의 경우 로봇이나 고사양 장비 복제는 물론 정밀함이 필요한 수술 등 의료분야와 탄소섬유 소재를 다량으로 만드는 의류분야 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퍼졌다. 우주 탐사 역시 3D프린트처럼 다방면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원장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일제히 우주 시장을 향해 뛰고 있다. 중국은 이미 내년 달 탐사위성 ‘창어 4호’를 발사해 달 뒷면을 탐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러시아는 달에 기지를 세우고 12명의 우주인을 상주시키는 달 식민지 계획을 내놓았다. 한술 더 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 195억달러(22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2033년까지 화성 유인 탐사를 성사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화성으로 사람을 보내는 게 2033년이라고 치면 15년 후의 일이다. 하지만 기술 점검이나 적응 실험 등을 감안하면 적어도 2022년까지는 기술 개발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건설기술연구원은 달 표면 흙인 월면토로 벽돌을 만들고 유인 우주선이 내릴 터미널을 건설하는 등 우주 시대의 건설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달과 똑같은 환경을 구현한 진공 상태의 ‘더티 배큠’(dirty vacuum·달과 유사하게 챔버, 즉 진공 용기 안에 먼지 등이 날아다니게 한 시설)을 만들었다. 그리고 월면토를 깔고 우주선이 제대로 이동할 수 있는지, 월면토로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이 원장은 “우주 기술 하나하나가 스핀온되면 그게 모두 건설의 새 먹거리가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열 명 중 아홉은 너무 이르지 않느냐, 우주에 언제 사람이 가서 살겠느냐 되묻는다. 그러나 이 원장은 건설에서도 ‘골든 타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골든 타임 내에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선진국의 뒤통수만 보며 꽁무니를 쫓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지금 시장에 만족하며 아파트만 짓고 있으면 고부가가치 산업에서의 입지는 완전히 사라진다”며 “다소 멀게 느껴질 때가 바로 미래 투자의 적기”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건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원장은 우리 정부와 건설업계가 드론이나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신기술만을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점을 아쉬워했다. 4차 산업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기술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파편화된 기술들을 융·복합해 새로운 서비스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기술 도입이 4차 산업혁명은 아니다”며 “다양한 기술이 결합해 사람들의 생활을 바꿔야 진짜 혁명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원장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하이퍼루프’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하이퍼루프는 2013년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제시한 차세대 초고속 교통수단을 말한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튜브 속을 간다면 지상에서도 초음속 여객기 콩고드 같이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엘론 머스크는 미국 텍사스에서 하이퍼루프 글로벌 챌린지 공모전을 열었고 전세계에서 2600개의 제안이 쏟아진 가운데 연구원은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이퍼루프 글로벌 챌린지는 지난 2월 인도 뉴델리에서, 지난달 미국 워싱턴 DC와 영국 런던에서 쇼케이스를 열었고 조만간 최종 사업 제안 대상을 채택할 예정이다. 채택된 제안을 바탕으로 실증 실험 튜브를 만들어 2020년에는 화물을, 2021년에는 여객용 초고속 운송 인프라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 전만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12시간을 꼬박 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제 KTX를 타면 2시간 만에 간다. 여기에 하이퍼루프 같은 초고속 이동체가 개발되면 서울~부산 거리는 30분으로 단축된다.

이 원장은 “하이퍼루프의 속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 기술이 자리를 잡으면 사람들의 삶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2~3시간씩 출퇴근으로 고통을 받을 일도 없고 이틀씩 택배를 기다릴 일도 없다.

뿐만아니라 하이퍼루프 기술을 통해 국토나 도시의 모습도 바뀔 전망이다. 이 원장은 “전세계 주요 도시들이 연결돼 도시의 기능을 애써 분권화하고 옮기는 일도 사라질 것”이라며 “삶과 공간, 모든 것이 바뀔 때 이 시기가 비로소 진짜 혁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그는 “건설 분야가 미래 인프라와 융합형 기술을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태식 원장은….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건설경영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관리실장, 한국건설관리학회장, 한국철도학회장, 한국공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대한토목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직과 한양대 건설환경플랜트공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4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대통령표창을, 2010년 대한민국 과학기술 훈장 도약장을 받았다.
이태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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