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기후변화가 밥상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역대급 폭우와 폭염의 영향으로 시금치·상추 등 채솟값이 급등했다. 자녀 소풍에 ‘시금치 빠진 김밥’을 쌌다는 주부들의 한숨 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식품·외식업체도 일제히 가격 인상에 나섰다. 극단적인 날씨가 물가 전반에 영향을 준다는 이른바 ‘기후플레이션(기후+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기온상승이 농산물 가격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을 견인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 등 일시적 기온상승 충격(1℃)이 발생했을 때 농산물 가격 상승률은 0.4~0.5%포인트 높아지고 그 영향은 6개월가량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겨울철 한파 등 이상 저온 현상이 발생했을 때도 비슷하게 관찰됐다.
문제는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가 어느덧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았다는 데 있다. 장마나 가뭄, 이로 인한 병충해, 일조량 부족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세계 10위권의 식량 수입국이자 곡물자급률이 20%대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앞으로 만성적 고물가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소득 대비 식비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의 삶은 더 빠듯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학계와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농업분야 기후위기 대응강화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또 물가 점검 회의를 개최해 식품·외식업체의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으나 근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기업들이 정부 압박에 눈치싸움을 벌이다가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면서 슬그머니 가격을 올려버렸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저소득층에게 바우처(할인 쿠폰)를 제공하는 대책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기후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일상이 되고 있다. 내년, 내후년에는 더 큰 기후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제는 기후위기에 강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스마트팜 등에 투자를 늘려 생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정부의 능동적인 기후위기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