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금융위기 굴레 끊으려면

  • 등록 2023-04-26 오전 6:15:00

    수정 2023-04-26 오전 8:48:00

[이철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시작된 위기가 유럽 크레디트스위스(CS) 은행에 이어 도이체방크까지 흔들며 진행중이다. 그나마 금융당국의 신속한 개입과 적절한 유동성 지원에 힘입어 금융시장 불안 사태는 점차 진정국면에 접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2008년에 이어 불거진 이번의 금융시장 불안은 금융위기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지만 사뭇 다른 모습도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였지만 2023년 금융불안 사태는 개별은행의 투자 실패에서 비롯된 유동성 위기로 보인다. 즉 2008년은 부동산 실물경제에서 파생된 투자 부실이 금융부문으로 전이돼 경제 전체위기의 단초가 됐지만 2023년은 단기 예금을 유치해 장기 자산에 투자한 몇몇 은행들의 자금 관리 부실이 위기의 불쏘시개라는 것이다.

2008년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를 비롯한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뻥튀기한 금융상품을 폭탄 돌리기식으로 운용했다. 즉 주택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주택담보대출액이 급증하자, 금융회사들은 소득과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도 대출을 해주었다. 이들을 대상으로한 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을 마치 정교한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ies) 상품으로 포장해 안전자산인 양 사고팔았지만 이후 집값이 하락하자 폭탄이 터진 것이다.

2023년에는 일부 금융회사들이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지 않고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다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SVB는 자산의 55%를 MBS와 미 국채 등에 투자했다가 채권가격이 급락하자 직격탄을 맞았다. 2021년 하반기부터 인플레이션과 가파른 금리 인상이 예상됐으나, 포트폴리오 조정을 하지 않고 버티다 위기를 맞은 것이다. 여기에 SNS가 활성화되면서 나쁜 소문이 퍼질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더 커진 점도 2008년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지난 고통을 잊을 만하면 또다시 새로운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위기가 발생하면 위기모면을 위해 금융기관들은 건전성 제고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감독당국 또한 규제를 강화하게 된다. 그러나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회귀하게 되고 결국은 또 다른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건망증 환자처럼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에 무감각한 것일까? 반복되는 위기의 이면에는 인간의 탐욕 본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은 본능적 욕구이기에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만큼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금융은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비즈니스이다. 금융산업이 신뢰를 잃으면 금융거래 및 서비스가 위축되기 때문에 경제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아가 경제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 아무리 견고한 실적과 역사를 갖춘 금융기관이라도 신뢰를 잃으면 한순간에 추락하게 된다는 사실을 리먼브러더스와CS 파산사태에서 목도했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잘못된 정보가 퍼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다는 인식을 고객들에게 남겨야 할 책무가 있다. 즉 금융회사의 평판이 이전보다 기하급수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의 건전성을 높이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적정하게 관리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인적구성원의 금융 전문성을 높이고, 내외부 통제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축해야 한다. 이사회 구성원의 전문성과 독립성도 강화해야 한다. 감독 당국은 금융기관들이 이러한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상시 모니터링하는 한편, 필요한 지원과 제재 수단을 적절히 병행 구사해나가야 한다. 차제에 2001년 이후 유지되고 있는 1인당 예금자 보호 한도(5000만 원)를 상향조정하는 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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