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AI 운용체계 ‘사만다’나 어벤져스 유니버스의 핵심으로 꼽히는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대화를 나누던 AI ‘자비스’가 대표적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이들 영화의 모티브가 된 AI 개발에 관심을 높여가던 찰나, 두각을 나타내던 기업이 인공지능(AI) 대화형 서비스 ‘이루다’를 개발한 스캐터랩이다. 그러나 ‘이루다’의 편향적 발언에 개인정보 유출 논란까지 더해지자 AI 기술에 대한 투자 잣대도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술력 뿐 아니라 윤리적인 면까지 평가하면서 투나 기준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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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터랩은 지난달 23일 대화 학습 딥러닝 기술(Deep Learning)을 이용한 AI챗봇 ‘이루다’를 출시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진짜 사람과 나누는 채팅같다’는 입소문을 타며 보름 만에 75만을 웃도는 이용자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혐오발언과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현재는 서비스가 중지된 상태다.
벤처캐피털(VC)을 비롯한 투자 업계에서는 일찌감치 스캐터랩을 주목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벤처스가 30억원을 투자하는 것은 물론 엔씨소프트 등 다수의 투자자들이 60억원 넘는 자금을 베팅한 점만 봐도 열기를 실감할 수 있다.
스캐터랩 자금 유치 이면에는 때마침 달아오른 VC들의 AI투자 성향도 흐름을 같이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인공지능 분야 VC투자 특성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2014~2018년) 국내외 VC의 AI 투자는 연평균 35.6% 증가했다. 투자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65.1% 늘어난 수치다.
김종윤 스캐터랩 대표는 창업 초창기부터 “대화 상대로서 사람보다 더 선호하는 오픈도메인 챗봇을 만드는 것이 목표”임을 강조해왔다. 대학 전공수업 때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졸업 후 스캐터랩을 세운 김 대표는 2011년부터 대화 데이터를 학습시키며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 자연어처리(NPL)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3년 카카오톡 대화를 통한 감정 분석 앱 ‘텍스트앳’과 2015년 연인 간 소통하는 앱 ‘진저’ 등을 출시하더니 2016년 심리학 논문을 분석해 연애 콘텐츠를 제공하는 ‘연애의 과학’을 내놓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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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과학은 한국에서 250만, 일본에서 50만 등 양국에서 300만 다운로드를 이끌어냈다. 이 여세를 몰아 2017년과 2018년에 포브스(Forbes)는 미래를 이끌어갈 파워리더에 김종윤 대표를 선정했다. 앞선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평에다 외국에서의 후한 평가가 더해지자 자연스럽게 차기 서비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해마다 늘어나는 1인 가구가 하나의 사회 흐름으로 자리한 상황. ‘인공지능(AI)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게 하겠다’는 이루다 출시를 앞두고 스캐터랩과 투자자들 모두 영화 ‘그녀’와 ‘아이언맨’을 떠올렸던 순간이다. 그러나 윤리규칙을 벗어난 부적절한 표현들이 이슈가 될 것이란 점에는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캐터랩은 이루다에서 나타난 특정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적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 뒤 문제점을 보완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종윤 대표는 “이루다가 다시 서비스를 재개하는 시점에는 모두의 바람처럼 사람들에게 더욱 이롭고 사랑받을 수 있는 인공지능(AI) 이루다로 돌아오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루다 개발을 위해 카카오톡 대화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직원들끼리 성적 대화를 재미 삼아 돌려보는 등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도 이번 이슈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VC들도 투자할 때 (AI챗봇에 대한) 윤리기준을 만족하는 기술인가 아닌가를 봐야 하는데 명확한 기준이 현재로서는 없는 것 아니냐”며 “제작사 입장에서도 쉽게 판단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이슈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벤처 업계 투자 위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앞다퉈 AI투자를 검토하던 투자업계 안팎에서도 이루다 이슈 이후의 문제를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눈앞의 기술력에 대한 투자보다 윤리적 잣대에 대한 한층 엄격한 심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루다 서비스를 시작으로 AI 챗봇 이슈와 윤리적인 이슈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